[1인분의 기후행동]
우울한 현실 속 치유·저항의 힘 가진 노래
기후재난과 기후협상 후퇴에 절망 퍼져도
위로 건네고, 마음 움직이는 '기후 합창단'
시민혁명 노래처럼 역사책에 기록될지도
편집자주
한 사람의 행동은 작아 보여도 여럿이 모이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기후대응을 실천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이 4주에 한 번씩 수요일에 연재합니다.
힘들고 우울할 때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역사 속 시민들이 온갖 고난을 겪으며 좌절과 분노 속에 희망을 찾고 세상을 바꾸려 거리로 나선 순간에도 늘 노래가 함께했다.
고통의 시간에 우리는 왜 노래를 부를까? 이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한 심리학자들은 노래에는 깊은 치유와 협력의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심리학자는 고난의 상황에서 노래는 개인의 내면에 숨겨진 저항의 힘을 끌어올린다고도 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개개인의 슬픔과 분노, 희망과 같은 감정은 모두 다른 이에게 옮겨가는 전염성이 있는데 노래가 강력한 매개체이자 증폭제 역할을 한다고 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세계 곳곳의 기후재난 재해와 기후위기 대응보다는 전쟁과 경제 발전에 몰두하는 주요국 지도자들, 매해 '후퇴'라는 꼬리표가 달린 기후변화 협상 소식에 사람들 사이에서 희망보다는 절망이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는 때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기후위기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기후 합창단'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단체는 600여 명의 단원이 런던, 포츠머스 등 영국 10개 도시에서 활동하는 기후합창 운동(Climate Choir Movement)이다. 국내에도 올해 1월 '합창단 기후행동(지휘자 이용주)'이 만들어져 40여 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주 있었던 합창단 기후행동의 공연은 새삼 노래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관객이 기후변화 시민단체와 전문가인데, 마침 들려온 117년 만의 폭설 소식에 공연은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합창단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화음에 사람들의 굳은 표정이 풀리고, 이내 노래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엄중한 곡도 있었지만 확성기를 통해 터져 나오는 분노와 경고가 아닌 진중하고 조화로운 화음에 얹혀 전달되는 메시지는 오히려 듣는 이로 하여금 차분히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합창단 기후행동이 앙코르 곡인 '북극곰의 눈물'을 마치자 사람들은 처음보다 밝아진 표정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공연장을 떠나며 문득 우리 각자에게 기후위기의 시대를 이겨낼 '기후 송(Song)'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겨났다. 일상에 치여 기후위기를 생각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를 알리고, 기후우울과 기후재난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기후행진의 현장에서 연대와 협력의 힘을 증폭시키는 노래들 말이다.
'사람들은 때로 격앙된 외침은 외면하지만 노래는 바삐 제 갈 길만 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해요. 노랫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부드럽게 하죠. 굳은 마음으로는 변화를 이루어낼 수 없으니까요.' 영국 기후합창 운동에 참여하는 한 단원의 말처럼 기후 합창단의 노래가 음률을 타고 우리 모두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된다면 기후위기를 극복하게 된 먼 훗날 프랑스혁명의 '라 마르세예즈', 멕시코 농민혁명의 '라 쿠카라차', 5·18민주화운동의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기후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기후 송도 함께 기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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