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떠나기 전에 이름을 불러주오."
이탈리아 식물학자 레나토 브르느의 '식물학자의 정원산책'이라는 책의 열두 번째 겨울산책 소제목입니다. 처음에는 겨울이 되니 잎들이 낙엽지기 전에 식물들을 알아봐 주고 이름도 불러주라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위기의 식물과 식물분류학자들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지난 40년간 새로운 식물을 목격 혹은 인지하고 이를 5년 안에 확인하여 인정받는 경우가 급감했다고 합니다. 식물연구를 하는 식물분류학자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며, 그나마 새로운 종(種)이 출현할 가능성이 있는 열대림마저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인류에게 존재 자체를 알리지 못한 채 지구에서 사라질 위험의 식물을 찾아내고 이름을 짓고 보전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도 식물분류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약학식물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경험이 다른 그의 글 전개 방식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책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롭고 공부할 내용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 자문을 의뢰받았던 모밀잣밤나무와 구실잣밤나무 식별이 생각납니다. 열매의 모양, 열매 뚜껑의 표면 무늬, 잎끝의 모양 등으로 구별해 왔는데 최근 유전분석을 통해 우리나라에 있는 나무들 중 확인된 모두는 구실잣밤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상당수 연구보고서나 표본관 라벨과 수목원 표찰이 바뀌어야 합니다. 천연기념물 343호인, 통영 욕지도의 모밀잣밤나무림도 개명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식별이 애매했던 특징을 인지하고 있었던 만큼, '왜 나는 깊이 파고들지 않아 바로잡는 기회를 남에게 주었을까'하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반면 변산바람꽃처럼 너도바람꽃과의 차이점을 인지하고도, 종을 세분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선입견의 핑계와 스스로의 게으름이 보태어져 신종(新種)을 밝혀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경우도 있습니다. 스스로 현장에서 일한다고 자부하면서도, 스스로의 틀에 갇혀 학문적 성취를 놓친 것이지요. 어디 연구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수많은 틀 속에서 소중한 사람과의 소통에 실패하기도 하며, 우리가 사는 따뜻해야 하는 사회를 반목 속에 방치하기도 합니다.
한 해의 마지막 장을 남겨둔 12월, 다시 한번 나 자신 스스로를 가둔 장막들을 거두어 내고 의미있는 그들을 제대로 바라봅니다. 때가 너무 늦어 우리 곁을 떠나보내기 전에 맞는 이름을 정답게 불러주었으면 합니다. 식물에게도 사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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