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이고 말 아끼는 중앙부처들
장차관 일정 취소, 예정 행사 줄줄이 연기
"이제 누가 행정수반 보고 일하겠나"
"우리 장관은 어떻게 되려나…" "이번 건은 내란죄에 걸리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밤 선포한 비상계엄을 국회 요구로 6시간 만에 해제한 4일 낮 중앙부처가 밀집한 정부세종청사와 주변 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 안은 크게 술렁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삼삼오오 이동하는 길에서도,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입주한 중앙동 15층 구내식당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식사를 마친 뒤 모인 흡연장에서도 화두는 모두 계엄이었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직원들이 동요하다 못해 크게 황당해한다"며 "지금 상황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잖아도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서 각종 정책과 사업 추진에 애를 먹었는데, 이제는 다 끝났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다른 국장급 공무원은 "이번 주에 발표될 대통령 지지율은 한 자릿수가 분명하다"며 "행정수반을 보고 일하는 공무원은 더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각 부처별로 계엄이 해제됐으니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이 같은 분위기는 인사혁신처와 소방청 등이 입주한 제2세종청사,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등이 있는 한누리대로변의 KT&G 타워도 다르지 않았다. 한 입주 기관 관계자는 "우리는 앞으로 예정된 각종 행사를 취소했지만 '분위기를 좀 더 보자'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처들은 그야말로 혼돈 자체"라고 전했다.
인구 39만 명인 세종에 거주하는 중앙부처 공무원은 1만7,000여 명이다. 그러나 각종 위원회와 중앙정부기관, 세종국책연구단지 등 공무원 신분에 준하는 이들까지 더하면 그 수는 배에 달하고, 가족까지 감안하면 세종에서 가장 큰 집단이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지난 4월 총선 때 중앙부처 공무원도 정권심판에 나섰던 곳이 세종"이라며 "이번 사태는 그 같은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사태에 공직사회가 받은 충격은 이날 외부 일정 전면 중단으로도 이어졌다. 장차관은 물론 고위직들도 극도로 말을 아끼며 납작 엎드린 상태다. 외부 공식 일정은 모두 중단하고 여론을 살피는 분위기다. 이날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 참석 예정이었던 아동권리보장원 자립준비청년 장학지원사업 업무협약식,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기자간담회 등이 줄줄이 취소됐다. 고용노동부도 제1차 산업전환 고용안정 전문위원회, 대한산업안전협회 60주년 기념식 등을 차후로 미뤘다. 다만 계속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꼭 필요한 외부 일정부터 재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한 중앙부처 관계자는 "우리 부는 곧 차관들의 공식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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