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 수준으로 노벨상 집착하는 트럼프
우려 높아진 '하노이 노딜' 번복 가능성
한국과 미국 모두 '지도자 리스크' 고조
노벨평화상은 공명심이 강한 세계 정치지도자들이 탐을 내는 상이다. 학자나 전문가들이 수상하는 다른 분야와 달리 평화 분야는 정량적·정성적인 평가가 용이하지 않다. 평화상을 수상했다고 평화를 보장하는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경이로운 외교의 마법사라 칭하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베트남전이 끝나기도 전인 1973년 레 둑 토 월맹 정치국원과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내막이 최근 영국 가디언지에 의해 공개됐다.
두 사람은 파리 평화협정의 주역이었지만 2년 후 월남은 공산화되었다. 당시 두 사람의 공동수상에 항의해서 노벨상 심사위원 5명 중 2명이 사퇴하는 등 내부에서도 진통이 심했지만 수상에는 국제정치 힘의 논리가 강하게 작용했다. 노벨평화상의 흑역사는 이뿐이 아니다.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대통령 등이 중동평화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중동의 화약고는 계속 불타고 있다.
최근 노벨평화상을 노리는 정치인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긴 이미 부와 권력을 손에 쥔 그는 명예만 얻으면 3관왕이 되니, 그의 욕망은 이해할 만하다. 기존 4명의 미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만큼, 트럼프도 5번째로 수상자 명단에 오르고 싶다.
트럼프 당선자는 집권 1기 동안 노벨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2019년 아베 일본 총리에게 "나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일본이 보낸 추천서 5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모두 내가 수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잔뜩 기대감을 나타냈다. 실제 그는 네 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하면서 노벨위원회가 시상 과정을 "조작하고 있다"는 불만을 드러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의 노벨상 집착증은 열병(infatuation) 단계라고 꼬집었다.
최근 들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물론 우크라이나까지 나서 트럼프의 노벨상을 부추기고 있다. 트럼프의 세속적 허영심을 활용하는 전략이다. 당선되면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료시키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전장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두 달여의 중동 휴전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풍전등화다. 2025년 노벨상 소재로는 극적인 공감대가 부족하고 전쟁은 진행형이다.
결국 트럼프의 선택은 김정은과의 재회다. 그는 선거 기간 중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화약 연기는 외면한 채 "핵무기 가진 김정은과 잘 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선 이후에는 '선 대화 후협상'을 거론하더니 과거 미북 정상회담의 실무 주역이었던 알렉스 웡을 국가안보부보좌관에 임명했다. 김정은을 관리하려는 고도의 전략일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명년 국제정치의 중요 이슈가 될 것이다. 양측은 서로 협력하여 공동수상을 하자며 달콤한 러브레터를 보낼 것이다. 폭언과 밀월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내용들이 뉴욕 채널을 통해 평양과 워싱턴을 오갈 것이다.
우려는 2019년 하노이 노딜이 번복될 가능성이다. 영변핵을 포기하고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민생결의안 11건 중 5건을 해제하는 스몰딜(small deal)에 의한 부분 비핵화가 합의되는 시나리오는 우리에게는 공포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매력적인 미끼다. 트럼프 주변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시니어'들은 없다. 노벨상을 받아야 하는 트럼프에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CVID) 북한 비핵화는 비현실적일 것이다. 트럼프 4년 임기 동안에도 강선의 첨단 우라늄 원심분리기에서는 핵물질이 계속 생산될 것이다.
종신 지도자 김정은은 시간 싸움에서 트럼프를 압도할 것이다. 북핵은 '호리병 밖으로 빠져나온 지니(genie out of the bottle)'처럼 한반도를 떠다닐 것이다. 북핵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서 우리 안보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서울은 비상계엄 소동으로 혼란이다. 한미 양국 모두 지도자 리스크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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