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환기(29) 마인즈그라운드 대표는 인터뷰 전날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인 3일 늦은 밤 비상계엄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국제회의, 전시회 등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마이스(MICE) 산업의 신생기업(스타트업)을 이끄는 그에게 계엄은 각종 행사가 열리지 못할 수 있어 큰 타격이다. "이달에만 행사 관련 매출이 수십억 원 걸려 있어 가슴을 졸였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최대 위기였죠."
4일 새벽 계엄이 해제되자마자 그는 혹시 몰라 직원들과 함께 서둘러 비상 대응 방안부터 마련했다. "계엄 선포로 기업 활동이 마비될 경우 급히 취할 조치들을 짚어봤죠. 행사 취소 시 외국 손님에 대한 통보부터 금전 처리와 책임 문제 등 극단적 상황까지 비상 대응 규범에 담았어요."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트에 따르면 마이스 산업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4,768억 달러(약 679조 원)이며 2032년 5,795억 달러(약 825조 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2019년 마인즈그라운드를 창업한 민 대표가 마이스 산업에 뛰어든 이유다. 그는 인공지능(AI)을 도입해 거대한 마이스 산업에 일대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 목표다.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그를 만나 마이스 산업의 미래에 대해 들어 봤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려서부터 일하며 용돈 벌어
경기 여주에서 젖소 목장을 운영하는 집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난 민 대표는 초등학생 때부터 일했다.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일하는 습관을 갖도록 만들었어요. 무슨 일이든 해야만 용돈을 받을 수 있었죠. 100여 마리 젖소에게 사료를 주고 목장을 청소하며 트랙터까지 몰았어요. 덕분에 독립심이 강해졌죠."
고교 시절에도 주말마다 막노동을 해 이동통신 이용료 등을 직접 냈다. 대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공부와 일을 같이할 수 있도록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3㎞를 달린 뒤 찬물로 샤워하고 하루를 시작했죠. 그만큼 치열하게 사는 것이 익숙했어요."
하지만 고생의 대가는 혹독했다. 어린 나이에 허리 디스크가 6개나 왔고 그중 하나는 대학 때 첫 학기를 마치고 입대한 해병대에서 터졌다. 그는 경희대에서 사회기반시스템공학을 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첨단기술비즈니스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 들어가니 예전보다 절실함이 덜해 규칙적인 생활이 깨졌어요. 스스로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에 해병대에 자원했죠."
군 생활도 유공 표창을 받을 정도로 악착같이 했다. "매일 아침마다 1등으로 구보했고 10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이함 훈련을 하며 고소공포증을 극복했어요. 박격포병이어서 무게 45㎏의 무거운 포판을 메고 완전군장한 채 120km를 행군하면서도 뒤처지지 않았어요. 군에서 책임감과 위기 때마다 자신을 강하게 다잡는 방법을 배웠죠."
빠른 시장 정보 수집 위해 마이스 택해
민 대표는 대학 시절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하며 일찍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2017년 제대 후 1학년 2학기에 복학하자마자 사업 감각을 익히기 위해 개인 사업자 등록을 했어요."
그는 한꺼번에 서너 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 "인터넷으로 휴대폰 케이스를 판매하는 사업부터 고교생들에게 입시 전략을 알려주는 컨설팅 사업, 반지하방을 빌려 수리한 뒤 외국인에게 제공하는 에어비앤비 숙소를 3개나 운영했죠. 낮에 공부하고 밤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청소하고 침구류를 세탁했어요. 새벽에는 운동 삼아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식당에서 밥 배달을 했어요. 덕분에 월 500만 원 이상 벌어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죠."
일에 자신감이 붙어 대학 4학년 때인 2019년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다. "사업을 하려면 시장의 흐름을 알아야 하는데 시장 정보와 동향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분야가 각종 전시회와 국제회의 등을 개최하는 마이스 산업이에요. 가장 빨리 시장 정보를 파악하고 싶어 마이스 사업을 하기로 했죠."
하지만 시작은 힘들었다. 수백 곳에 제안서를 뿌렸으나 의뢰가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그는 기업간거래(B2B) 마케팅이론을 믿고 무상으로 시범 사업을 제공했다. "하나의 거래처를 만들면 그 뒤에 100개 이상 거래처가 따라온다는 이론을 믿었죠. 실제로 지방자치단체의 다문화 가정 행사를 무상으로 진행하면서 입소문이 퍼져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창업 후 터진 코로나19는 전화위복이 됐다. "코로나19로 대면 행사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위기가 찾아왔어요. 그때 돌파구로 온라인 행사 중계 시스템을 개발했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직원들이 모두 반대했지만 한 달 동안 밤새워 유튜브를 찾아보며 공부해 직접 온라인 행사 중계 시스템을 기획했어요."
20개 대학이 그가 개발한 온라인 행사 중계 시스템으로 입시 설명회를 열면서 사업 기반을 다졌다. "당시 온라인 행사를 열려는 곳은 많은데 이를 진행할 마이스 업체가 부족했어요. 하루에 온라인 행사 의뢰를 서너 건씩 받을 정도로 일이 몰렸죠. 서울옥션의 온라인 경매 등 온라인 행사를 월 40건 진행한 적도 있어요."
그렇게 회사가 알려져 지금까지 수백 건 행사를 진행했다. 이제는 행사 숫자보다 규모에 집중해 양보다 질을 추구할 계획이다. 우선 그는 경쟁이 치열한 마이스 산업에서 2군 선두로 올라서는 것을 당면 과제로 삼았다. "대기업 계열사가 1군이라면 100억~1,000억 원 규모의 행사를 진행하는 곳이 2군, 100억 원 이하 행사를 진행하는 곳이 3군이에요. 올해 2군 문턱에 들어섰으니 이제 선두로 올라서야죠."
마이스도 AI 시대
이를 위해 그는 초격차 전략을 꺼내 들었다. 마이스 산업에 특화된 AI 기술로 경쟁업체들과 확연하게 격차를 벌이겠다는 전략이다. "이제 마이스도 AI 시대에 접어들었어요. 다양한 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AI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그는 최근 '마이스 메이트'라는 AI 플랫폼을 만들었다. AI가 접목된 마이스 포털이다. "전시회 등 각종 행사 정보를 모아놓은 곳이에요. 어떤 행사들이 열리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죠. 행사 정보를 학습한 대화형 소프트웨어인 AI 챗봇이 각종 문의에 자동 응대해요. 나중에 주최 측에서 행사 정보를 직접 올릴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나중에 마이스 산업에 특화한 생성형 AI도 개발할 계획이다. "마이스 메이트를 통해 각종 자료들을 학습하는 생성형 AI를 만들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관람객 문의 등 반복 업무는 AI로 대응할 수 있죠. 이를 적용한 AI로봇을 행사에 투입할 수도 있어요."
AI 개발은 내, 외부 역량을 적극 활용한다. "영업이익의 30%를 AI 개발에 투자해요. 일부 기능은 내부 개발팀에서 직접 개발하고 일부는 카이스트의 AI 연구실과 내년 초 산학협력을 맺어서 공동 개발할 계획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바뀐 삶의 자세
여기 그치지 않고 민 대표는 지난 4월 자회사 고트팜을 설립해 스마트 농업도 시작했다. 고트팜은 독특한 회사다. 한국신지식인농업인회에서 지정하는 농업 명장인 신지식인들의 농사 비법을 AI로 전수하는 사업을 한다. "농업의 지식재산권(IP)을 다루는 회사죠. 수익을 농민들과 나누는 사업이어서 명장들은 앉아서 수익을 올릴 수 있어요. 딸기, 고추, 상추 등 3가지 작물을 우선 진행합니다."
고트팜은 해외에서도 소문이 나서 인도네시아에 수출도 한다. 이를 위해 민 대표는 최근 현지 지사를 설립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고추를 많이 먹어요. 그런데 공급이 부족해 고추값이 비싸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지식인의 고추 수확량을 두 배로 늘리는 비법을 적용한 스마트 농장을 현지에 만들어요. 감지기를 부착해 관리하는 농장에서 고추를 재배하죠."
민 대표는 AI와 신사업을 통해 매출을 늘릴 방침이다. 지난해 매출은 35억 원, 영업이익률은 15%다. 올해 매출은 100억 원 이상을 예상하며 내년 매출 목표는 올해보다 50% 이상 늘어난 150억 원이다. "내년에는 AI 관련 행사를 늘려야죠. 또 자체 기획하는 행사로 지식재산권을 많이 확보할 방침입니다. IP 확대로 2027년까지 1,000억 원 매출을 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특히 내년에는 자체 기획한 한류 행사를 해외에서 적극 진행할 계획이다. "K팝, K뷰티, K푸드 등 한류 관련 행사는 해외에서 인기가 많아요. 2023년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미국 지사와 인도네시아 지사를 활용해 한류 행사를 늘려야죠."
그는 2021년 뇌종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갖다 오면서 삶의 자세가 바뀌었다. "뇌 동맥을 감싼 종양을 떼어내면 혈관이 터질 수 있는데 그러면 살아날 방법이 없대요. 병원에서 수술하지 않고 30대 중반까지 살거나 아니면 죽을 각오로 수술하는 방법 중 선택하라고 했어요. 다행히 수술이 잘됐죠."
이후 그는 덤처럼 주어진 생을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에게 잘 사는 것이란 세상에 기여하는 삶이다. "세상을 혁신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전해야죠. 신재생 에너지에도 관심 있어 AI로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하는 사업을 위해 지난달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부와 업무협약을 맺었어요. 앞으로 다양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 매출 1조 원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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