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극한 대립을 깨는 정치 구조
편집자주
12·3 불법계엄과 탄핵정국에서 드러난 우리 문제점을 점검하고, 오늘의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각 분야 대응방안을 석학들의 연재 기고 형식으로 긴급 점검합니다.
위기와 한계에 달한 87년 체제
견제 입장만 충실한 거대 야당
권력분산 대통령제 등이 대안
1948년 대한국민이 5,000년 역사에서 최초로 보통·평등·직접·비밀·자유선거로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그 제헌의회가 온 국민이 지켜야 할 헌장인 헌법을 제정하였다. 하지만 헌법은 그간 집권자의 야욕으로 파행을 거듭하였다. 39년간 9개의 헌법이 명멸해갔으니 그야말로 '헌법의 왈츠' 시대였다.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이다.
짧은 민주공화국 역사에서 여섯 번째 이르는 공화국은 그야말로 공화국의 상품전시장(foire)이나 다름없다. 다행히 87년 체제가 37년간 존속하면서 헌법의 안정을 구가한다. 하지만 지난 헌정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권위주의의 구각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민주화의 상징이던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전직 대통령이 가족과 친인척 비리로 불행한 대통령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진하였고,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오랫동안 수감되었다. 노무현·박근혜·윤석열 세 명의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되어 직무가 정지되었다. 급기야 윤 대통령은 비록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되었지만 현직 대통령 신분을 유지한 채 형사 피고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왜 이렇게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의 불행이 계속되고 있는가? 그들의 잘못이 제일 크겠지만 보다 근본적 성찰이 요구된다. 권력을 가진 자의 본인 성찰 부족 이전에 제도의 잘못을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 87년 헌법에서 4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한 상태를 보여주는 징표이다. 그 과정에서 외국의 '좋다는 제도'는 모두 들여와서 '제도의 성찬'을 이룬다. 대통령 정책실, 방송통신위원회, 특별검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등등. 하지만 결과는 신통찮다. 우리의 역사와 토양을 외면한 채 무분별하게 도입한 낯선 제도는 우리 옷에 맞지 않는다.
이제 상투성이긴 하지만 지난 77년에 이르는 헌정사의 교훈을 귀감으로 삼아서 우리에게 맞는 법과 제도를 찾아나가야 한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권력을 가진 자는 항시 그 권력을 남용하려 한다"라고 설파하였다. 그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 원리에 입각한 입법·사법·행정의 '3권분립'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한국 헌정사에서는 과연 권력 상호 간에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모든 길은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로 귀결되었다. 그 청와대를 벗어나려는 윤 대통령의 몸부림은 장소만 이전하였지 용산은 또 다른 구중궁궐이 되어버렸다.
87년 헌법 체제는 위기와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1997년 미증유의 외환위기 환란을 극복한 국민적 저력을 정치에도 보여주어야 한다. 2024년에 박정희·전두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군을 동원한 비상계엄 선포가 장군이 아닌 전직 검찰총장 손에 의해 단행되었다는 점이 국민들을 아연실색하게 한다. 군인, 민주투사, 법률가 등으로 이어진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을 종식시키는 새로운 체제 정립을 위한 헌법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다시는 불행한 대통령이 탄생하지 않도록 헌법의 권력구조에 대한 근본적 손질이 불가피하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장기집권의 폐해를 극복하면서 천명을 다하였다. 국회의원 4년 임기에서 대통령도 글로벌 기준인 4년 중임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무엇보다 권력의 균형추가 대통령으로 기울면서 나타난 부작용을 청산해야 한다. 헌정 안정을 도모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원내각제는 매력적이다. 그러기에 1960년 4월 학생혁명 이후에 도입한 정부 형태가 전형적인 의원내각제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87년 6월 항쟁 때 소리 높여 외쳤던 ‘직선쟁취’의 유혹을 간직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직선제를 유지하면서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방책은 책임내각제밖에 없다.
대통령과 국회다수파의 불일치는 미국식 대통령제에서 보여주는 '분점 정부'(divided government)다. 이 경우 정부와 의회의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이 필수적이다. 미국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여야 의회지도자 특히 야당지도자와의 대화에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소야대는 매우 낯설다. 윤석열 정부의 불행도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필자는 87년 헌법 체제에서 대통령과 국회 다수파와의 관계를 여섯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다(헌법학, 법문사, 396면). 그중에서 가설로 남겨둔 마지막 유형이 대통령 재임 중 단일 야당이 국회다수파를 지배하는 여소야대 현상이다.
그런데 윤 정부에 이르러 그 가설이 현실화되었다. 대통령 취임 시에도 그러하였지만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압도적으로 단일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게 되었다. 87년 체제에서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대통령과 국회 권력은, 마주보는 두 기차가 달리듯이 정면충돌했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그간 잠자던 국회의 권한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총리·국무위원 해임건의, 감사원장·장관급뿐만 아니라 평판사와 평검사까지 이어지는 탄핵소추를 의결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특별검사, 무차별적인 예산 삭감 등등.
하지만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국정 책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판과 견제에만 치중했다. 정부는 의회를 장악한 야당의 의회권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민의에 따라 대통령과 정부가 권한을 내려놓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려놓는 데 전혀 익숙하지 않은 정부여당은 결국 비상계엄이라는 파국으로 내닫게 된다.
지난 11월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에서 정대철 회장을 중심으로 제시한 개헌안은 첫째, 대통령 4년 중임제에 직선제는 유지한다. 둘째, 국회는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불신임권을 가진다. 헌정회는 이를 '권력분산형 대통령중심제'라고 명명한다. 하지만 대통령직선제와 내각불신임권은 이원정부제의 핵심사항이다. 즉 대통령제의 핵심인 대통령 직선과 의원내각제의 핵심인 내각불신임권을 차용한 점에서는, 대통령제도 아니고 의원내각제도 아닌 제3의 정부 형태로서 이원정부제라 명명한다. 이원정부란 국민으로부터 직선 되는 대통령과 의회의 신임에 기초한 총리(내각)가 한 정부 안에서 병존하는 양두(two-head)제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980년 전두환 군부가 도입하려 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소위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혐오로 인하여 왜곡된 권위주의적 정부 형태로 오도되기도 한 바 있다. 이원정부제의 원형으로 지목되는 1919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헌법 체제도 결국 나치 출현의 빌미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하지만 이원정부제는 국가원수가 왕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일원적 의원내각제가 정립되기 이전에 과도기적으로 왕과 의회가 권력을 분점하던 이원적 의원내각제의 현대적 재현이다. 그런 점에서 정당 이론의 바이블인 '정당론'의 저자인 프랑스의 세계적인 정치헌법학자 모리스 뒤베르제 교수는 유럽에서 이원정부제가 작동하는 각국의 학자와 총리를 초빙한 학술대회에서 '반(半) 대통령제'(semi-presidentialism)라고 명명한다.
헌정회가 제시한 내용의 핵심은 '책임내각제'이다. 국민직선을 통하여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의 정치적 무책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리를 비롯한 내각에 국회가 불신임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되면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미국식 분점정부가 아니라 사실상 프랑스의 한 정부 안에 여야가 공존하는 소위 '동거정부'(gouvernement de la cohabitation)에 준하는 책임내각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대통령은 외교·국방·유럽연합 문제에 전념하고 내정은 내각과 의회가 책임지는 프랑스의 전 총리 샤방델마스가 제시한 바 있는 '유보영역'(domaine réservé) 이론의 현실화이다. 다른 한편 내각의 안정을 위해서는 독일식 의원내각제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건설적 불신임투표'(konstruktives Misstrauensvotum)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 이는 의회에서 차기 총리를 미리 선출하지 않고는 내각불신임권 안을 아예 상정할 수 없도록 한 제도이다. 의원내각제에서 다당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안정을 통하여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고 마침내 흡수통일을 달성한 서독의 저력이 여기로부터 비롯된다.
현실적으로 이원정부제의 작동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라마다 그들 특유의 국가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때에 비로소 이원정부제는 빛을 발할 수 있다. 대통령과 국회다수파가 일치할 경우에는 미국 대통령제 못지않은 강력한 대통령제가 된다. 하지만 여소야대가 된다면 대통령과 내각은 불일치하면서 갈등구조를 양산할 수 있다. 그러기에 프랑스에서는 1958년 드골 대통령이 ‘위대한 프랑스’를 기치로 강력한 정부를 구축하기 위하여 1962년 대통령직선제를 구현하였다. 하지만 동일한 헌법에서 미테랑과 시라크 대통령을 거치면서 현실화된 동거정부는 이원정부제의 현실적 작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금년 6월에도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해산 이후 여소야대로 정국불안정이 초래됐다. 핀란드는 제정러시아의 식민 지배를 거치면서 외교·국방은 대통령 고유권한으로 하고 내정은 내각이 책임진다. 다른 한편 오스트리아는 헌법 규범상으로는 전형적인 이원정부제이지만, 직선대통령이 사실상 의원내각제의 국가원수와 같이 상징·명목적 지위에 머물면서 실제로는 의원내각제와 비슷한 형태로 작동한다.
정부 형태 내지 권력구조의 형성과 작동에 정답은 없다. 현행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제도 변경이 불가피하다.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제 요소는 지나치게 확대되어 작동하고, 의원내각제 요소는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그렇다면 대통령으로 기운 제도의 불균형을 극복하여 새롭게 모색하는 길만이 균형을 회복하고 민주헌정을 구현하는 유일한 방책이다. 이제 대통령 무책임제를 극복하고 국회다수파도 국정에 직접 참여하여 정치적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 선택이 불가피하다. '권력분산형 대통령중심제'이든 '이원정부제'이든 그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제도의 설계와 실천이 중요하다. 정치 혼돈이 극도에 달한 지금이야말로 천명을 다한 제6공화국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제7공화국 헌법 시대를 열어야 할 때이다.
연재 순서
<1>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2> 박진 KDI 교수 <3> 윌리엄 페섹 전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4> 김태형 숭실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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