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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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뉴스에 파묻혀 지내던 와중에 미국 연방의회에서 지난주 의미심장한 일이 있었다. 공화당의 극우분파 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아직도 정식으로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2024~2025년 연방정부 지출 법안이 화근이었다. 지난 10월에 이미 회계연도가 시작됐고 그동안 임시지출법안으로 연명하던 중, 내년 3월까지의 임시지출법안을 막 통과시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화요일에 나온 민주당과 공화당의 타협안에 대해 트럼프 당선자가 부결시키라고 주문하면서, 정부부채 한도를 2027년까지 유예하는 조항을 추가할 것도 요구했다.
내년에 쓸 예산이니 새 대통령이 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에 대해서는 낙선운동도 불사하겠다고 협박했다. 또한 정부부채 한도를 높이는 문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찬성해 왔으니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 짐작했던 듯도 하다. 그런데 하원의장이 트럼프의 요구가 담긴 새로운 법안을 목요일 본회의에 상정했지만 무려 38명 공화당 의원의 반대표 때문에 부결됐다.
트럼프와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소위 중도파 의원들이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트럼프를 추종해 왔던 극우분파 의원들이 주도했다. 재정건전성이 그들의 최우선 정책과제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그러던 와중에 데드라인에 쫓기던 민주당과 공화당 중도파는 트럼프의 요구사항이 빠진 임시지출법안을 새로이 마련해 금요일 밤에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트럼프의 체면이 구겨진 것은 당연했다. 다만 자신의 꼼수에 당한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애당초 정부부채 한도를 인상하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협상은 트럼프 임기가 시작된 이후에 있을 예정이었다. 공화당 내 극우분파들이 결사반대할 것이 분명했고, 많은 이가 연방정부 셧다운도 가능하리라고 봤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정부부채의 한도가 높아지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 자신의 공약을 추진할 자금이 풍부해질 것으로 봤다. 반대로 최악의 경우 정부부채 한도 협상이 잘되지 않아 셧다운을 할 것이면, 조 바이든이 대통령인 지금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협상의 귀재" 트럼프는 실패했다.
더 문제인 것은 내년부터 공화당의 하원 의석수가 과반수에서 고작 2석만 더 많다는 점이다. 3명의 공화당 의원만 반대해도 트럼프 행정부는 곤란한 상황이 된다. 지난주와 같은 상황이 향후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트럼프의 앞길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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