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도대체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나와 아내의 연말은 기습적인 친위쿠데타 덕분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겨우 열리게 된 봉사 모임 송년회에서도 나는 어느덧 12·3 비상계엄령이 발표되던 날 밤의 황당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도대체 2024년도에 비상계엄이 웬 말이냐고 열을 올리고 있는데 누군가 "작가님, 그 얘긴 이제 그만하시죠"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는 계엄이나 탄핵 얘기가 못마땅한 게 아니라 파티장에서 정치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탄핵 정국 중 자신의 SNS에 반려견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 가수가 화제였다. 강아지 사진을 올린 행위보다 팬의 다이렉트 메시지(DM)에 '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라고 받아친 게 사람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의 정치 혐오와 무관심에서 나는 일종의 '피해의식'을 감지했다. 그는 겁을 내고 있는 것이다.
보수의 텃밭 'TK'도 사실은 폭동과 저항의 땅이었다. 하지만 저항의 대가는 혹독했고 사람들은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개입할수록 개인의 삶이 망가진다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남의 일에 나서지 말고 너 먹고살 궁리나 하라는 어른들의 준엄한 경고였다. 하지만 그렇게 각자도생의 길만 걸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했을까. '나라가 어두우면 집에서 가장 밝은 걸 들고 거리로 나오는 한국인들'이라는 바깥의 감탄이 가능했을까.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지식인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 역사 곳곳엔 자신의 안전보다 모두의 미래를 걱정했던 '지식인'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결정판은 계엄 포고령을 듣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국회 앞으로 몰려든 시민들이었다. 일반인들 앞에서 계엄군은 무력했다. 그들이 제압할 수 없었던 건 정치인이나 관료의 권위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이었다.
윈스턴 처칠은 "전쟁은 너무 중요한 문제라 군인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라고 했다. 이 말을 고스란히 연장하면 정치도 그렇다. 정치는 우리 삶에 너무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투사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이번 탄핵 촉구 집회 때 등장한 제과점이나 커피숍 선결제 문화를 생각해 보라. 남태령고개에서 경찰차 차벽에 가로막힌 농민들의 트랙터 앞으로 닭죽을 보내 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 그들이 '내란수괴를 구속하라'며 거리로 나선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그릇된 신념 때문도 아니었다.
우리의 정체성은 평소 무엇을 먹고 어떤 상표의 가방을 드느냐가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니 진부한 삶에서 잠시 이탈하자. 뻔한 인생에서 나오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려움이나 두려움을 떨쳐내고 시민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쓴 것으로 알려진 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를 소개하며 글을 닫는다.
"처음에 그들이 공산주의자를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다음 그들이 사회주의자와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그들 중 누구도 아니었으므로. 그다음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그들이 나를 덮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