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600만 소상공인 시대, 소상공인의 삶과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란 사회가 제시하는 미적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자는 운동을 뜻한다. 최근 패션계에도 그 영향을 미치며 좀 더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을 위한 의류가 시장에 나오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다소 더딘 편이다. 닷테이블의 안은진 대표는 선택지가 적은 국내 큰 컵 여성들을 위한 언더웨어와 어패럴 브랜드를 전개하며 보디 포지티브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많은 여성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그에게서 앞으로의 목표와 브랜드 스토리에 대해 물어봤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C컵부터 I컵까지 큰 컵 여성을 위한 언더웨어와 어패럴 브랜드 ‘EMIM’을 운영하는 닷테이블 안은진입니다. 저는 체구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평균 여성들보다 큰 가슴을 가지고 있습니다. 10살부터 브라 착용을 시작해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속옷 착용에 대한 불편함을 많이 겪었어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2020년부터 C컵 이상의 언더웨어를 기획하는 일을 시작했고 나아가 속옷 패턴부터 생산 관리, 마케팅에 관여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가우디플러스라는 큰 컵 여성 커뮤니티도 운영하기 시작했고요. 언더웨어뿐 아니라 일상에서 입는 의류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어패럴 분야로도 확장하게 됐어요.”
사명과 브랜드명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닷테이블은 테이블 위의 작은 점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서 보내더라고요. 그 책상에서 제가 저의 꿈을 만들어가는 것을 닷 그러니까 점으로 표현했습니다. 저의 공간에서 제 꿈을 만들어가는 상태를 행복하게 여기며 이런 회사명을 짓게 되었습니다. EMIM 같은 경우는 Empower Inner My Muse의 약자입니다. ‘나 자신의 뮤즈에게 힘을 주어라’라는 뜻인데요. 대중적인 사이즈가 아니다 보니 속옷을 구하기가 어렵고 자신의 몸이 문제라 여기는 큰 컵 여성분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자 그렇게 지었어요. 당신에게 맞는 제품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것일 뿐, 몸이 문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어떻게 창업에 뛰어들게 됐나요?
“저는 패션 관련 전공자가 아닌 생물학과 전공자인데요.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다른 일을 하다가 저의 불편했던 가슴 경험 때문에 패션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큰 컵을 위한 제품 자체는 있지만, 수요가 극히 적기 때문에 원하는 제품을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어요. 막상 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큰 컵 여성만을 위한 제품이 국내에 없고 해외 직구 혹은 맞춤형 제품을 제작해서 입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교환과 환불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 벌어져요. 이런 불편함을 겪고 있는 여성들이 무려 국내에만 322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 컵 여성을 위한 언더웨어와 옷들을 만들어야겠다 다짐했고 창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한 사항은 무엇인가요?
“저는 기획자이면서도 소비자이기도 해요. 그러한 시각에서 제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입고 싶으면서 편한 예쁜 속옷을 만들려고 해요. 제가 운영 중인 가우디플러스 커뮤니티 여성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제 생각이 대중적인지도 확인하고요. 어패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언더웨어는 패션이 된 지 오래되었어요. 그런데도 큰 컵 언더웨어 시장은 대중적인 사이즈에 비해서 기능성이나 디자인이 많이 뒤처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많이 고려해 개발하고 있습니다.”
기존 속옷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나요?
“기능성 부분에서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큰 컵 속옷은 단순히 작은 속옷에서 사이즈만 키우면 된다는 접근법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이 아닙니다. 중력의 영향을 고려해 가슴의 무게를 잘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장치가 필요한데요. 어깨끈의 두께를 설정하는 것부터 와이어 없이도 가슴을 잘 지지할 수 있는 구조를 고려해 패턴을 만들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섬세한 작업이 필요해요. 재단을 위해 패턴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1㎝ 정도의 차이만 줘도 속옷의 최종 핏에 큰 영향을 주거든요. 그러니 기존 패턴을 사용할 수 없고 오직 큰 컵 여성만을 위해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디자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큰 컵 속옷은 젊은 층의 니즈를 반영하지 못한 디자인의 제품이 대부분입니다. 저희 커뮤니티에서는 일명 ‘할머니 브라자’라는 표현을 써요. 난해하고 큰 레이스가 덕지덕지 붙은 촌스러운 브라를 일컫습니다. 저는 조금 더 심플하고 모던하면서도 몸의 라인을 잘 살려주는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객층이 한정적일 것 같은데요. 시장성에 대해 확신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업을 처음 구상한 것은 제가 대학생이던 때였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제 사이즈에 맞는 속옷을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친구들에게 이 같은 고민을 얘기하면 공감을 받기는커녕 그저 부럽다는 이야기만 들을 뿐이었죠. 그래서 큰 컵 여성들을 대상으로 고객 인터뷰를 하고 시장 테스트를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직접 제작하진 않았고 중국에서 제가 마음에 드는 제품을 사입해 판매를 시작했는데 바로 다음 날부터 물건이 팔리기 시작하더라고요. 3개월만 판매해 보고 안 팔리면 포기하려 했는데, 제 예상보다 인기가 좋아서 바로 제작을 위해 준비에 나섰습니다. 동시에 인터뷰도 계속해서 진행했어요. 혹시 나만 이런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큰 컵 브랜드를 소비할까 하는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서요. 큰 컵 여성들과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사업에 대해 확신하게 됐어요. 그분들의 마음이 저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예쁘고 편한 속옷에 목말라 있었거든요. 또한 터질 것 같은 셔츠, 가슴에서 잠기지 않는 원피스 등 같은 경험을 한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패럴 제품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편안하면서도 예쁜 언더웨어와 어패럴을 만드는 것입니다. 언더웨어는 필수재입니다. 고객들이 우리 언더웨어를 입고 좀 더 자신감 있는 생활을 하셨으면 해요. 속옷이 불편하면 어딘가 위축되고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거든요. 언더웨어가 자리를 잡게 되면, 그 이후엔 다양한 어패럴을 소개해 드리며 원하는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실망감이나 사이즈 선택에서의 불편함을 해소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외적인 부분을 벗어나서 심리적 어려움도 함께하고 싶어요. 큰 가슴으로 인해 느꼈던 외부적 시선이나 불편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요. 가우디플러스 커뮤니티를 확장하여 정보도 많이 나누고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며 큰 컵 여성분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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