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캐나다 눈물의 고속도로 연쇄 살인사건
1969년 이후 공식적으로만 여성 18명 피살
피해자 대부분 원주민, 히치하이킹 하다 참변
대중교통 부실해 차 없는 원주민 최후 선택지
낯선 이 위험 알지만 구조적으로 위험 내몰려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969년 10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윌리엄스호수 인근 숲. 한 사냥꾼이 짐승들이나 다닐 법한 길에서 여성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 희생자는 '글로리아 무디'라는 27세 원주민으로 조사됐다. 숨진 무디의 몸에는 성폭행과 구타 흔적이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캐나다 중서부를 횡단하는 16번 고속도로 근처였다. 무디는 시작에 불과했다. 원주민 여성이 16번 고속도로 인근에서 실종되고, 주검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반복됐다. 1970년 8월 히치하이킹을 하던 18세 소녀 미셸린 파레가 고속도로 인근 허드슨스호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973년 게일 웨이즈가 그랬고, 1974년 16세 콜린 맥밀런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히치하이킹을 하다가 실종됐고,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원주민 여성 실종 반복되는 고속도로
16번 고속도로에서 실종·사망사건이 지속되자 캐나다 사회는 이곳을 '눈물의 고속도로(Highway of Tear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6번 고속도로 중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프린스 조지부터 프린스 루퍼트까지, 약 712㎞ 구간이 해당한다.
사건은 잊을 만하면 계속 일어났다. 1978년 12세밖에 되지 않은 모니카 잭이 자전거를 타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췄다. 유해는 1995년이 돼서야 찾았다. 셸리 앤 바스쿠는 1983년 16번 고속도로를 따라 걸으며 귀가하고 있었지만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994년에는 라모나 윌슨이 히치하이킹을 하다가 사망했다. 2002년에는 25세 니콜 호어가, 2006년에는 22세 타마라 치프먼이 각각 히치하이킹을 하던 중 실종됐고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들의 시신은 발견했으나, 범인을 잡진 못했다. 고속도로 근처는 범행을 은폐하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일단 지역 주민들이 "곰이 차보다 자주 보인다"고 할 정도로 인적이 드물다. 폐쇄회로(CC)TV는커녕 가로등이 없는 구간도 많다. 몇몇 지역에서는 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산과 호수로 둘러싸여 있어 시신을 은폐하기도 쉽다. 근처의 야생동물들이 시신을 훼손할 가능성도 크다. 지속적으로 사건이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여러 명의 살인범이 눈물의 고속도로를 범행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빈자의 유일한 이동수단 '히치하이킹'
대다수 피해자가 히치하이킹을 했다는 사실은 의구심을 자아낸다. 낯선 사람의 차를 타게 되는 히치하이킹은 운전자가 마음만 먹으면 외진 곳으로 데려갈 수 있어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히치하이킹을 하던 여성들이 고속도로에서 반복적으로 실종·살해된 것을 인지했다면, 그 이후에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게 합리적이다. 게다가 캐나다 경찰도 실종 사건이 문제가 되자 고속도로 옆에 "히치하이킹을 하지 말라"고 적은 표지판을 세웠다.
하지만 이 같은 경찰 조치에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히치하이킹 금지는 눈물의 고속도로 살인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피해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낯선 이의 차량에 올라탄 이유는 히치하이킹이 '유일한 이동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눈물의 고속도로가 위치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중서부는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 인프라가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다. 시골 산간 지역이라 걸어서 이동하기도 어렵다. 큰 도시가 없고 작은 마을 단위로 이뤄져 있어 식료품을 사거나 은행 등에 가려면 장거리를 이동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 없이는 생필품을 사는 것조차 힘든 지역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원주민들의 경우 소득이 낮은 탓에 대부분 차량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캐나다 정부에 따르면 2005년 기준 원주민의 연평균 소득은 1만7,700캐나다달러로, 비원주민(4만1,800캐나다달러)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쳤다. 고속도로 실종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1970~1990년대에는 그 격차가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캐나다는 1990년대 중반까지 원주민 자녀를 부모와 강제로 떼어내어 기숙학교에 입학시키는 등 구조적인 원주민 차별 정책을 시행했는데, 성인 원주민은 번듯한 직장을 갖기도 어려웠다.
피해자들로선 히치하이킹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생활을 이어나가려면 뾰족한 대안이 없었을 법하다. 학교나 직장, 병원을 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는 건 지역에 자리 잡은 문화이기도 했다. 대중교통 인프라 부족과 원주민 차별, 빈곤 등 캐나다의 구조적 문제가 희생자들을 '죽음의 히치하이킹'으로 내몬 셈이다.
경찰 "희생자 18명", 원주민 "40명 이상"
눈물의 고속도로에서 실종·사망이 반복된 수십 년간, '사라진 피해자'를 찾으려는 가족과 이웃의 노력도 이어졌다. 그러나 경찰은 냉담했다. 인종차별적 사고를 지닌 경찰은 원주민 여성 실종 사건에 역량을 쏟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추모 행사를 열고 전단지를 붙이는 한편, 피해자를 납치하거나 살해한 범인을 찾아 달라고 끊임없이 정부에 요구했다.
첫 사건 발생 35년 만에 캐나다 정부의 반응이 나왔다. 캐나다 연방경찰인 왕립기마경찰(RCMP)은 2005년 눈물의 고속도로 사건 재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07년, RCMP는 18명의 여성이 눈물의 고속도로에서 살해당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몇몇 사건의 범인도 잡았다. 2012년 경찰은 바비 잭 파울러라는 남성의 유전자정보(DNA)가 맥밀런의 시신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파울러가 눈물의 고속도로에서 2명을 더 살해한 것으로 추정했지만, 그는 2006년 다른 성범죄로 수감돼 있던 중 사망해 단죄받지 않았다. 최연소 피해자인 잭을 살해한 범인은 2019년 개리 핸들런으로 밝혀졌고, 2022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그러나 원주민 단체들은 희생자가 40명 이상이고, RCMP가 부실 수사를 했다고 비판한다. 피해자가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조사 대상에서 누락시키거나, 단순 가출자로만 취급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2007년 수사 종료 이후 공식 피해자를 추가하지 않고 있는데, 눈물의 고속도로에서는 2023년 11월에도 20대 원주민 여성 첼시 콰우가 사망한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언론은 "눈물의 고속도로 담당 부서 인원이 6명으로 축소됐고,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해당 부서 출범 초기의 수사 인원은 70명 이상이었다.
'눈물의 고속도로' 오명 끝내려면
50년 넘게 지속되는 '눈물의 고속도로 살인'을 끝낼 해법은 '교통·통신 인프라 확충'이라는 지적이 많다. 해당 인프라의 미비가 연쇄 실종·사망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는 2006년부터 눈물의 고속도로 구간을 운행하는 버스 노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10년 넘는 끈질긴 설득 끝에 2017년에야 버스 노선이 신설됐지만, 이마저도 주 3회 운영에 불과하다.
2021년에는 휴대폰 송신탑을 세웠고, 이로써 눈물의 고속도로 전 구간에서 통화가 가능해졌다. 로레인 휘트먼 캐나다 원주민여성협회 회장은 로이터통신에 "원주민 여성에게 축복"이라면서도 "지역을 안전하게 만들 첫 단계가 완성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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