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30주년 맞은 SM 공연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새해를 여는 1월, SM이 자주 호명된 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SM타운이라는 브랜드를 걸고 2000년대부터 꾸준히 열려온 SM엔터테인먼트의 레이블 공연이 화제의 정점에 오른 건 2021년 이후 매해 1월 1일마다 개최된 온라인 무료 공연이었다. 지난 오프라인 공연들이 SM 레이블 팬을 뜻하는 진짜 ‘핑크 블러드’가 모이는 반목과 화합의 장이었다면, 온라인 무료 공연은 K팝이라는 단어와 희로애락을 한 번이라도 엮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한판 살풀이였다. 실시간 중계 영상 하단의 댓글 창뿐만이 아닌 K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플랫폼마다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H.O.T부터 NCT까지 한 무대
바로 그 레이블 공연이 2025년, ‘30주년’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SM기획에서 SM엔터테인먼트로 새롭게 사명을 바꾼 1995년을 기준으로 한 셈법이었다. 2024년 한 해를 쉬어간 공연은 그사이 세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걸 증명하듯 오프라인 공연이 되었다.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지난 11, 12일 열린 공연에는 이틀간 4만여 명의 팬들이 몰렸다. H.O.T. 멤버 강타와 보아처럼 이제는 ‘이사님’으로 불리는 이들에서 아직 데뷔 1년이 채 되지 않은 보이그룹 NCT WISH까지 라인업을 빼곡히 채웠다. 걸그룹 에스파 세계관 속 버추얼 인물로 유명한 나이비스(nævis), SM과 영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문앤드백(MOON&BACK)이 합작해 만든 디어 앨리스(Dear Alice)에 아직 데뷔하지 않은 남자 연습생 25명을 사전 공개한 SMTR25의 무대까지 보고 있자니 ‘정말 30년이 지나긴 지났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격세지감이란 사자성어는 이럴 때 쓰는 거였다.
그렇게 모든 게 바뀐 것 같다가도 전혀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30주년 공연에 앞서 해당 공연에 참여하는 가수와 레이블 사이 끈끈한 동료애만 오간 건 아니었다. 계약에서 건강 문제까지 멤버 일부가 이탈하거나 극히 일부 멤버만 최종 무대에 오른 경우가 많았다. 소녀시대 태연이나 슈퍼주니어 예성은 공연이 열리기 전 팬과의 소통 서비스를 통해 회사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을 토로했고, 레드벨벳의 웬디는 정확한 사유를 밝히지는 않은 채 이미 한 달 전 결정된 불참 상황이 공연 직전에야 공지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K팝 팬에게는 뒷맛 씁쓸한 익숙함이었다. 가수와 소속사 사이 ‘말할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의 가수가 출연하는 합동 공연의 맹점을 감안해도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S.E.S 바다 "어떤 시기에 음악을 들었나요?"
익숙하다고 해서 결코 당연할 수는 없는 진통을 지나 결국 막이 열린 무대는 지난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공연을 지켜보고 있는지를 직접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그 한가운데 노래가, 그를 부른 가수가, 그를 사랑한 사람들의 시간이 있었다. 플라이투더스카이 멤버 환희와 라이즈 소희가 화음을 맞춰 ‘시 오브 러브(Sea of Love)’를 부를 때, S.E.S. 바다와 에스파 카리나, 윈터가 ‘드림스 컴 트루(Dreams Come True)’로 호흡을 맞출 때, NCT DREAM이 청춘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그대로 담아 엑소의 ‘러브 미 라이트(LOVE ME RIGHT)’를 부를 때. 오래 묵은 불신의 눈과 고단한 삶에 지쳐 아이돌 좋아하던 시절 같은 건 세월 저 너머로 던져버린 심장도 기꺼이 반응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전 공연까지 무려 6시간 반에 달하는 긴 공연이 끝난 뒤, 어떤 화려한 무대도 아닌 ‘여러분은 어떤 시기에 우리 음악을 듣게 되었을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바다의 편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인생은 때론 차갑고 우릴 무너지게 할 것만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모두가 더욱 용감해지길 바랍니다. 저희 음악은 지나가는 유행가가 아닌 우리가 꿈꾸고 용기 내고 싶을 때 늘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우리의 음악이 여러분의 긴 인생의 바다에서 흐르고 또 흐르기를 바랍니다.”
숫자, 산업, 규모, 성장. 거창한 단어들 사이를 묵묵히 버텨낸 가수와 노래들의, 그리고 K팝 30년의 핵심이 바로 그 안에 있었다. 적어도 이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이 독특한 음악이자 문화를 앞으로 조금 더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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