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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혀 쓰는 온천, 악어 사는 호수, 뱃놀이하는 동굴... 바다 없지만 물 좋은 곳

입력
2025.01.22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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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수안보온천과 충주호 주변

여행객이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악어봉 전망대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악어떼가 호수로 헤엄치는 듯한 풍광을 보기 위해 위험하게 산을 오르는 이들이 많아,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지난해 정식으로 등산로를 개설했다.

여행객이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악어봉 전망대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악어떼가 호수로 헤엄치는 듯한 풍광을 보기 위해 위험하게 산을 오르는 이들이 많아,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지난해 정식으로 등산로를 개설했다.

모름지기 온천단지라면 골짜기 가득 하얀 김이 폴폴 피어오를 텐데, 충주 수안보에선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차가운 겨울 아침, 일부 대형 건물에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안보는 ‘왕의 온천’이라 자랑한다. 충주는 수안보온천이 아니라도 물이 좋은 고장이다. 내륙의 바다라 불리는 충주호의 겨울 서정을 따라가면 의외의 풍광을 만날 수도 있다.


“식혀서 씁니다” 왕의 온천 수안보

“뜨끈하게 몸을 담그시려면 욕조 수도꼭지를 한동안 틀어 놓으세요.” 수안보 한 호텔에 체크인하며 주인에게 들은 말이다.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여겼는데 안내문을 보니 이유가 있었다. “53도로 자연 용출되어 데우지 않고, 섞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천욕으로 적합한 온도인 40~50도로 식혀 사용합니다.” 수안보온천에 김이 나지 않는 이유다.

‘무색 무취 무미의 약알칼리성으로 피부질환, 부인병, 위장장애, 신경통 등에 효과가 뛰어나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뜨끈한 욕조에 몸을 담그니 ‘피로에 지친 분들에게 생기를 보완해 준다’는 말만은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수안보온천. 뜨거운 용출수를 식혀서 사용하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김이 나는 건물이 거의 없다.

수안보온천. 뜨거운 용출수를 식혀서 사용하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김이 나는 건물이 거의 없다.


수안보온천 한 숙소 욕실에 '53도'를 강조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수안보온천 한 숙소 욕실에 '53도'를 강조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충북 충주와 괴산 사이 월악산 자락에 위치한 수안보는 역사적으로 검증받은 온천이다. 물이 솟는 안쪽 마을이라는 의미의 ‘물안비’가 한자어 수안보로 바뀌었다고 한다. 수안보온천에 대한 기록은 조선 문종 때 완성된 ‘고려사’에 처음 등장한다. 고려 현종 9년(1018) 상모현에 온천이 있다는 내용이다. 조선 헌종 때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연풍현 수안보 땅에 온수가 있는데, 수질이 좋아 병자들이 많이 몰려든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 이성계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청풍향교지에는 숙종이 휴양과 요양을 위해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왕의 온천’이라 자랑할 만하다.

수안보에선 굳이 ‘원탕’을 찾을 필요가 없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자체가 물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충주시에서 온천수를 확보한 뒤 업소에 공급한다. 온천단지의 숙박시설과 대중탕이 모두 똑같은 물을 공급받고 있다는 얘기다.

수안보온천 무료 족욕장. 지난해 개통한 수안보온천역 이용객을 겨냥해 겨울에도 운영하고 있다.

수안보온천 무료 족욕장. 지난해 개통한 수안보온천역 이용객을 겨냥해 겨울에도 운영하고 있다.


여행객과 지역 주민이 수안보온천 무료 족욕장에서 족욕을 즐기고 있다.

여행객과 지역 주민이 수안보온천 무료 족욕장에서 족욕을 즐기고 있다.

온천욕이 번거롭다면 간단하게 온천의 정취를 맛볼 수도 있다. 마을 입구 물탕공원에서 하천을 따라 족욕공원이 조성돼 있다. 산책로 곳곳에 무료 족욕장을 설치해 놓았다. 4월부터 10월까지만 운영했는데, 올겨울 처음으로 2개 족욕장에 바람막이 천막을 두르고 낮 12시부터 온천수를 흘려 보내고 있다. 지난해 말 개통한 중부내륙선 철도 이용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판교역에서 수안보온천역까지 1시간 20분이 걸리는데, 열차가 하루 4회만 운행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용객이 많지 않다. 족욕장 물 역시 너무 뜨거워 40도 정도로 식혀서 내보낸다.

충주호 수변 종댕이길과 악어봉

충주 살미면에서 제천 한수면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는 우람한 산줄기와 고요한 호수 풍경을 두루 즐길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다. 충주댐 호수가 언뜻언뜻 스치는 도로는 월악산의 깊고 푸근한 골짜기로 연결된다.

그 중간에 악어봉(447m)이 있다. 산 이름은 보통 지형이나 모양새를 따서 짓는데 악어봉은 꼭대기에서 보는 전망을 기준으로 삼았다. 악어가 한국 역사에서 흔히 등장하는 동물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에 얻은 지명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대중화하며 ‘인증사진’ 명소로 널리 알려졌다는 뜻이다.

충주 월악산 악어봉 탐방로 입구. 무단횡단 해야 했던 국도 위에 육교가 놓였다.

충주 월악산 악어봉 탐방로 입구. 무단횡단 해야 했던 국도 위에 육교가 놓였다.


지난해 정식으로 악어봉 탐방로가 개설됐지만 일부 사유지 구간엔 안전시설을 설치하지 못했다.

지난해 정식으로 악어봉 탐방로가 개설됐지만 일부 사유지 구간엔 안전시설을 설치하지 못했다.


알음알음 알려진 봉우리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월악산국립공원은 지난해 9월 정식 탐방로를 개설했다. 위험하게 무단횡단을 일삼던 탐방로 입구에 육교를 세우고, 가파른 비탈에는 계단을 설치했다. 주차장에서 봉우리 꼭대기까지 900m에 불과하지만 대부분 급경사라 쉬엄쉬엄 왕복 1시간 30분은 잡아야 한다.

입구 육교가 끝나는 지점에 잘생긴 전나무 한 그루가 푸르름을 자랑하고, 계단 주위로 잎갈나무 군락이 가지를 펼치고 있다. 계단이 끝나면 경사는 한결 덜하지만 바닥이 험하다. 군데군데 발길에 닳은 나무뿌리가 드러나 있어 조심해야 한다. 험한 돌부리를 넘고 제법 큰 바위도 비켜가야 한다. 일부 비탈 구간은 사유지여서 안전 시설을 설치하지 못했다. 그렇게 약 600m를 오르면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호수가 언뜻언뜻 보인다.

충주 악어봉 전망대 아래로 잠기지 않은 산줄기가 악어처럼 호수로 헤엄치는 듯 보인다.

충주 악어봉 전망대 아래로 잠기지 않은 산줄기가 악어처럼 호수로 헤엄치는 듯 보인다.


악어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충주호 주변.

악어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충주호 주변.


악어봉 전망대에서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월악산 봉우리가 겹쳐져 있다.

악어봉 전망대에서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월악산 봉우리가 겹쳐져 있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길은 다시 한번 치오른다. 숨을 고르며 전망대에 닿으면 낭떠러지 아래로 시원하게 충주호가 펼쳐진다. 물에 잠기지 않은 여러 산줄기가 꿈틀꿈틀 호수로 헤엄친다. 왜 악어봉이라 했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다. 한겨울이지만 악어 등줄기에는 소나무가 많아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파란 하늘을 담은 호수까지 계절이 무색한 절경이다. 탐방로는 악어봉 정상이 끝이다. 올라온 길로 다시 하산해야 하는데, 미끄러지지 않도록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힘든 등산을 하지 않고 고즈넉하게 겨울 호수 풍경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충주 시내 동쪽 심항산(385m)을 한 바퀴 두르는 종댕이길이다. 충주댐 호숫가에 종을 엎어 놓은 듯 봉긋하게 솟은 심항산은 산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자락으로 난 탐방로 전체 구간이 3.8km에 불과하다. 높이가 아담해 조선시대에는 오히려 유용하게 쓰였다. 바로 뒤편 계명산(775m)에 봉수대를 설치했는데, 오르기가 어렵고 흐린 날이면 분간이 어려워 심항산에 따로 봉수대를 설치했다고 한다.

충주호 수변 종댕이길의 출렁다리. 이 길에서 거의 유일하게 눈길을 끄는 인공구조물이다.

충주호 수변 종댕이길의 출렁다리. 이 길에서 거의 유일하게 눈길을 끄는 인공구조물이다.


종댕이길은 심항산 자락 충주호 수변을 따라 걷는다.

종댕이길은 심항산 자락 충주호 수변을 따라 걷는다.


지역에서는 심항산을 ‘종당산’ ‘종댕이산’이라 불렀다. 1985년 충주댐이 건설되며 종당마을은 호반 위로 자리를 옮겼고, 옛 흔적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이 오가던 비탈길은 2013년 종댕이길로 정비됐다. 감탄을 자아낼 만큼 풍광이 빼어난 길은 아니다. 오히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처럼 수수하고 평온한 게 이 길의 매력이다.

'마지막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약 1km 도로를 따라 걷다 오른쪽 오솔길로 접어들면 종댕이길이다. 짧은 내리막을 제외하면 전 구간이 높낮이가 크지 않은 둘레길이다. 원터정, 밍계정, 윗종댕이정 등 군데군데 쉼터와 조망대가 설치돼 있다. 조망대라고 해도 풍광이 유별난 건 아니다. 그저 나뭇가지 사이로 잔잔한 호수가 보일 뿐이다. 이따금씩 숲에서 솔바람이 스치고 호숫가에 잔물결이 찰랑거린다. 자극적이 풍광이 없으니 돌과 나무에 눈길을 주고, 바람소리와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끝내 산과 호수에 말을 건넨다. 걷는 동안만은 시인이다.

충주호 수변 종댕이길 출렁다리.

충주호 수변 종댕이길 출렁다리.


종댕이길은 특별히 눈길을 끄는 요소가 없이 일상처럼 평온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종댕이길은 특별히 눈길을 끄는 요소가 없이 일상처럼 평온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 길이 끝날 즈음에 짧은 출렁다리를 건넌다. 종댕이길에서 유일하게 시선을 끄는 구조물이다. 출렁다리를 통과하면 호숫가 산비탈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마을로 이어지고, 뒤편은 계명산자연휴양림이다.

백옥 캐던 동굴에서 뱃놀이, 활옥동굴

마지막재에서 종댕이길 반대편 도로를 따라가면 활옥동굴이 있다. 일제강점기(1922년)에 개발을 시작한 국내 유일의 백옥·활석 광산을 활용한 동굴테마파크다. 마그네슘 성분의 활석은 흰색, 엷은 녹색, 회색을 띤다. 순도가 높은 활석은 화장품 원료와 베이비파우더로, 순도가 낮은 활석은 윤활제와 구두약, 세면도구 등으로 쓰인다.

동굴 내부 길이는 기록상 57km, 지하 수직고 711m로 활석광산 중 동양 최대 규모다. 현재 2.5km를 정비해 다양한 빛 조형물과 즐길 거리를 설치했다. 검은 석탄광산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조명을 설치한 동굴 내부는 전체적으로 은은한 우윳빛을 띤다. 통로 폭과 높이는 웬만한 승용차가 통과할 정도로 넓고 평탄하다.

충주호 주변 활옥동굴. 주 통로는 차량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충주호 주변 활옥동굴. 주 통로는 차량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다.


활옥동굴 내부에 갖가지 빛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활옥동굴 내부에 갖가지 빛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활옥동굴 내부의 고추냉이 농장.

활옥동굴 내부의 고추냉이 농장.


활옥동굴 내부의 와이너리. 온도와 습도가 세계 최대 규모인 몰도바 국영 밀레스티미치 와이너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활옥동굴 내부의 와이너리. 온도와 습도가 세계 최대 규모인 몰도바 국영 밀레스티미치 와이너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동굴 온도는 연중 11~15도를 유지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따뜻하다. 광산의 역사를 알리는 전시장에 온열좌욕기를 설치해 놓아 옥 동굴 속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탐방로를 따라 설치한 갖가지 동물 조형물과 야광 벽화가 호기심을 잡는다.

곁가지 동굴로 이동하니 푸릇푸릇한 고추냉이가 자라고 있다. 고추냉이는 저온성 반음지 식물로 생육 조건이 까다로운데, 활옥동굴이 최적의 환경이어서 고추냉이 농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와인창고도 있다. 몰도바산 와인만 수입 판매하는 업체가 대한 공간이다. 습도와 온도 등이 세계 최대 와이너리인 몰도바 국영 밀레스티미치 동굴과 흡사하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한다.

여행객들이 활옥동굴 내부 호수에서 카약을 즐기고 있다.

여행객들이 활옥동굴 내부 호수에서 카약을 즐기고 있다.


활옥동굴 내 매점에서 팔고 있는 충주사과빵.

활옥동굴 내 매점에서 팔고 있는 충주사과빵.


충주호 주변 여행 지도. 그래픽=송정근 기자

충주호 주변 여행 지도. 그래픽=송정근 기자


하이라이트는 동굴 안 호수에서 즐기는 뱃놀이. 지하 암반수가 고여 형성된 호수에서 카약을 타는 체험이다. 절개면 한쪽에서 폭포수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여행객은 은은한 조명 아래서 몽환의 세상으로 노를 젓는다. 동굴 입장료는 1만 원, 카약 체험을 포함하면 5,000원이 추가된다.








충주=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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