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필사 책 열풍
편집자주
매주 출판 담당 기자의 책상에는 100권이 넘는 신간이 쌓입니다. 표지와 목차, 그리고 본문을 한 장씩 넘기면서 글을 쓴 사람과, 책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이를 읽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출판 기자가 활자로 연결된 책과 출판의 세계를 격주로 살펴봅니다.
프로야구 곽도규(기아 타이거즈) 선수가 한 자, 한 자 필사를 하는 모습이 지난달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나왔습니다. 좌완 투수인 그는 '돈 버는 손'으로 취미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오른손으로 필사를 합니다. 2004년생인 곽 선수는 만 20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있었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이런 아날로그 취미를 갖게 된 게 인상적이었는데요, 그는 "확실히 필사하고부터 차분해진 것 같다"는 효과를 전했습니다.
2025년 출판 트렌드를 꼽으라면 단연 '필사'입니다. 필사는 그동안 일부 독자가 좋아하는 책을 베껴 쓰는 일종의 독후 활동에 머물러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출판 시장엔 기획 단계부터 필사를 목적으로 만든 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왼쪽 장엔 옮겨 쓸 글이 오른쪽 장은 빈 공간으로 편집된 책들입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필사 책은 전년 대비 판매가 692.8% 상승했고, 필사 책 출간 종수도 같은 기간 57권에서 81권으로 42.1% 늘었다고 합니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특히 20, 30대 사이에서 독서에 이어 필사로 확장된 아날로그 붐이 일어나는 추세"라며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글씨를 예쁘게 쓰고 꾸며 SNS에 인증하는 모습이 활발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필사 책 분야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문학은 물론이고 가사부터 헌법까지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데요, 계엄 정국의 영향으로 책 '헌법 필사'의 경우 한때 품귀 현상이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곽 선수가 말했듯이 필사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불교 경전을 베끼는 사경이 하나의 종교 의식으로 여겨지는 것과 맞닿아 있겠죠. 여러 작가들은 또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으로도 필사를 추천합니다. 손과 팔에 힘을 주고 종이 위에 또박또박 '쓰는 행위'는 '읽는 행위'보다 글을, 그 글에 담긴 정신을 체화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겠죠. 새해 다짐, 실천이 참 어렵죠. 그렇다면 행동으로 옮길 생각들을 한 자, 한 자 손으로 써 보시는 건 어떨까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