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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공중에서 음속 1.5배로 비행한 AI 파일럿... 재밍 공격도 소용없다

입력
2025.02.07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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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제약 없어 전투기 급선회·급강하 가능
통신 두절돼도 스스로 판단해 끝까지 임무
美 2028년 AI 파일럿 전투기 1000대 확보
KAI, 한반도 지형 특화 AI 파일럿 개발 착수

편집자주

우주,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등 첨단 기술이 정치와 외교를 움직이고 평범한 일상을 바꿔 놓는다. 기술이 패권이 되고 상식이 되는 시대다. 한국일보는 최신 이슈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의 숨은 의미를 찾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는 '테크 인사이트(Tech Insight)'를 격주 금요일 연재한다.

한성호 한국항공우주산업 연구원이 6일 서울 강남구 한국항공우주산업 서울사무소에서 AI파일럿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한성호 한국항공우주산업 연구원이 6일 서울 강남구 한국항공우주산업 서울사무소에서 AI파일럿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6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서울사무소에서 시연된 공중 전투 시뮬레이션. F-16 전투기와 인공지능(AI) 파일럿을 탑재한 무인 전투기가 동해상에서 북한 전투기인 미그-21(MIG-21) 4기와 조우했다. 서로를 육안으로 식별하기엔 불가능한 먼 거리로, 우리 군 전투기가 레이더로만 미그-21 4기의 위치를 인지한 상태였다. 인간 파일럿을 태운 F-16은 교전하지 않고 즉각 현장을 이탈했다. 대신 무인 전투기는 미그-21을 공격하기 위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 계속 비행에 나섰다. 인간 파일럿은 전투 유무만 판단하고, 위험한 전투는 AI 파일럿 전투기가 맡은 것이다.

무인 전투기 1기 대 미그-21 4기로 수적으로 불리한 전투처럼 보였지만, 미그-21 4기가 AI 파일럿에 모두 격추되는 데는 단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성호 KAI 미래소프트웨어(SW)기술팀 연구원은 “AI 파일럿 기술이 전력화했을 때를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영상”이라며 “AI 파일럿은 전투기가 성능을 100%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영국, 중국, 일본 등 많은 국가들이 2030년 이후 전력화를 목표로 AI 파일럿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AI 파일럿은 미래 전장의 승패를 가를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임성신 KAI AI〮SW 연구실장은 "미국은 항공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라이트 형제의 비행(1903년)과 미국의 첫 초음속 비행(1947년)에 이어 AI 파일럿 등장을 꼽을 정도"라며 "미국 같은 선진국들에선 AI 무기체계를 핵무기에 버금가게 통제한다"고 강조했다.

AI 파일럿이 탑재돼 비행한 미국 공군의 X-62A VISTA. 미 공군 홈페이지

AI 파일럿이 탑재돼 비행한 미국 공군의 X-62A VISTA. 미 공군 홈페이지


인간 조종사, 5년 전 모의 대결서 이미 AI에 '완패'

AI 파일럿이 탑재된 무인 전투기는 유인 전투기보다 월등한 성능을 자랑한다. 인간 파일럿은 전투기가 움직일 때 발생하는 최대 중력가속도(G)인 9G를 육체적으로 견디기 어려워 기동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히지만, 중력의 제약을 받지 않는 AI 파일럿은 급선회와 급강하 등 민첩한 기동이 가능해 공중전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AI의 고도화한 연산 능력과 빅데이터 분석 덕분에 비행과 침투, 공격 등 다양한 상황에서 인간 파일럿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작전 판단을 내리는 게 가능하다. 2016년 이세돌과 AI 알파고 대결에서 수백만 개의 기보를 습득한 알파고가 매번 최적의 수를 냈던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 미 국방부가 2020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존스홉킨스 응용물리학연구소에서 실시한 인간 파일럿 대 AI 파일럿 간 모의 시뮬레이션 도그파이트(공대공 전투)에서 인간은 AI에 0대 5로 완패했다. 당시 인간 파일럿으론 미 주력 전투기인 F-16 조종사가 직접 나왔으나, 5차례 모의 전투에서 AI 파일럿에 모두 격추당했다. 미 공군에서 사용하는 무선 통신용 식별 코드인 ‘뱅거(Banger)’로만 알려진 이 F-16 조종사는 이후 미 언론과 인터뷰에서 “인간 파일럿이었다면 내 공격에 꼼짝없이 격추될 상황이었지만, AI 파일럿은 모두 회피했다”며 “AI 파일럿이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전술을 택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전했다.

AI 파일럿이 무서운 이유는 기존 무인기들의 최대 취약점인 ‘재밍 공격(Jamming Attack)’에서도 완전히 자유롭다는 점이다. 재밍 공격은 무인기의 무선 통신 시스템에 적대적인 간섭 신호를 전송, 무인기를 통제하는 본부와의 통신을 방해하거나 차단해 기능을 상실하게 만드는 걸 말한다. AI 파일럿이 탑재된 무인기는 본부와 통신이 두절되더라도 AI 스스로 판단해 임무를 끝까지 수행할 수 있다. 조이상 한성대 기계전자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11월 29일 국회에서 'AI 파일럿 무인 전투기 개발'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AI 파일럿이 만들어지면 공중 전투에서 과연 유인 전투기의 생존성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대한민국 공군도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3년 9월 인간 파일럿(오른쪽 원)이 모는 F-16 전투기와 AI 파일럿이 모는 X-62A VISTA가 시뮬레이션상이 아닌 실제 공중에서 도그파이트를 벌이는 모습. 유튜브 캡처

2023년 9월 인간 파일럿(오른쪽 원)이 모는 F-16 전투기와 AI 파일럿이 모는 X-62A VISTA가 시뮬레이션상이 아닌 실제 공중에서 도그파이트를 벌이는 모습. 유튜브 캡처


시각물_해외 AI 파일럿 개발 동향

시각물_해외 AI 파일럿 개발 동향


“AI 파일럿 논문 대다수 중국에서 나온다”

현재 AI 파일럿 개발에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2019년부터 ‘에어 컴뱃 에볼루션(Air Combat Evolution, ACE)’ 프로그램을 통해 AI를 활용한 자율 전투 시스템을 개발해왔다. 2022년 12월에는 AI 파일럿이 미 항공기인 X-62A VISTA를 직접 조종하는 데 성공했고, 2023년 9월엔 인간 파일럿이 모는 F-16 전투기와 시뮬레이션상이 아닌 실제 공중에서 도그파이트까지 벌였다. 승부 결과는 보안 이유로 공개 되진 않았지만, AI 파일럿은 음속의 1.5배가 넘는 시속 1,931㎞까지 속도를 내며 기동했다고 한다.

미 공군의 AI 파일럿 기반 무인 전투기 개발에는 록히드마틴과 보잉, 노스럽그루먼, 제너럴 아토믹스, 안두릴 등 미국 방산업체들이 대거 뛰어들어 사업 수주를 위해 경쟁 중이다. 미 공군은 총 60억 달러(약 80조 원)를 투자해 2028년까지 AI 파일럿 전투기 1,000대를 확보, 2030년 초에는 전력화한다는 계획이다. 방산업계에선 미 공군의 AI 파일럿 전투기는 2027년쯤이면 작전에 직접 투입 가능할 정도로 개발이 끝날 것으로 전망한다. 미 공군은 AI 파일럿을 통해 직접 탑재한 무기로 적을 공격하는 건 물론, 인간 조종사가 탑승한 미 스텔스 전투기인 F-35와 전략 폭격기 B-21 등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긴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AI 파일럿으로 미국의 아성을 넘어 세계적인 군사적 우위를 점하려 한다. 앞서 중국은 2017년 발표한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통해 AI를 전쟁의 게임 체인저로 삼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밝혔다. 현재 중국 국영 항공우주 및 방산 기업인 중국항공공업집단공사(AVIC)가 AI 파일럿 기술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고 있으며, 2023년엔 중국 인민해방군(PLA) 산하 연구소에서 AI 파일럿과 인간 조종사가 모의 공중전을 벌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업계 전문가는 “현재 AI 파일럿 관련 논문의 대다수가 중국에서 나온다”며 “중국은 AI 기술이 미래 분쟁에서 군사적 균형을 결정 짓는 핵심 요소가 될 걸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의 다목적 무인기. KAI 제공

한국항공우주산업(KA)의 다목적 무인기. KAI 제공


KAI, 2030년 이후 전투기 완전 자율화 계획

우리나라에선 KAI가 지난해부터 AI 파일럿 개발에 본격 뛰어들었다. KAI는 지난해 2월 이사회를 통해 AI 파일럿이 포함된 '차세대 공중 전투체계 개발(NACS)'에 총 1,025억 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세계적인 AI 파일럿 개발 흐름에 더 이상 뒤처질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KAI 서울사무소는 AI 파일럿 개발의 두뇌 역할을 하는 곳이다. KAI의 미래SW기술팀 소속 20여 명의 연구원만 출입이 가능한 극비 보안시설인 AI 파일럿 연구개발 실험실이 자리 잡고 있다. KAI 관계자는 "우리나라 공군이 만든 AI 센터가 서울 양재동에 위치하는 등 AI 관련 기업과 연구 인프라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며 "협업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KAI의 AI 연구인력들이 서울사무소에 모여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KAI는 지난해 경남 고흥의 전용 비행장에서 소형 무인기에 AI를 탑재해 목표 지점으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는 길이 3.1m에 마하 0.6(시속 735㎞)으로 비행하는 다목적 무인기(AAP)에 AI를 탑재, 스스로 비행하게 하는 실증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개발 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면 2027년엔 FA-50 전투기에 AI 파일럿을 탑재해 유무〮인 편대 비행에 나서고, 2030년 이후엔 AI 파일럿이 단독 임무를 수행하는 완전 자율화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이 2022년에 AI 파일럿의 전투기 비행에 성공한 것과 비교하면 KAI의 기술 개발 정도가 10년 정도 뒤처졌지만, 한반도 지형에 특화한 AI 파일럿 개발이 필요하기에 국내 독자 기술 구축이 필수라는 게 KAI의 설명이다. 한성호 연구원은 “AI 파일럿 개발에 가장 큰 난제는 AI를 학습시키기 위한 고품질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이라며 “우리나라에는 미국 같은 사막 지대가 없어 AI 파일럿 실증을 위한 비행 공간이 적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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