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연 시집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
편집자주
결혼은 안 했습니다만, 시집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시인.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신이인이 사랑하는 시집을 소개합니다.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 봉주연 지음·현대문학 발행 192쪽 1만2,000원
“만나기 전까지 서로의 정체를 맞춰보는 놀이가 아닐까 / 사랑에 대해 묻자 너는 이렇게 대답했다” (‘러브레터’)
오래된 친구를 보러 제주도에 다녀왔다. 친구는 능청맞고 수더분한 생활인이 되어 있었다. 호떡을 비싸게 주고 사진 않았는지, 이는 잘 닦았는지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사랑이구나.’
한동안 글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사랑을 말하지 못했다. 아니 에르노에 따르면 “사치란 모피 코트나 대저택이 아니고 지성적인 삶도 아니며 한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열정”이라고 한다.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감정을 누리는 여유를 가져도 될까. 어디서 얼마나 가지면 될까.
봉주연 시인의 첫 시집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는 그런 질문에 답하는 듯하다. 집으로 형상화되는 사랑의 장 안에서 화자는 상처 입고, 고민하고, 초대하고, 홀로 남는다. “이제부터 손을 눈에 가져가면 안 돼. / 아프면 울어내는 수밖에 없으니까. / 흙에 손을 대던 어린 시절을 모두가 말렸다.”(‘생활’)
사랑은 어느 정도의 용기를 전제하는 수행이다. 선을 넘는 것과 비슷하다. 금기라기에는 시시콜콜해 보이는 침범들, 이를테면 서로 손을 더럽히는 흙장난에 비유될 만큼의 사소함일지도 모르겠다. 시집의 다수 시편이 전달하는 긴 시간 동안 시인은 사소한 용기를 바라고 있다. 가만한 그의 사랑은 무척이나 촘촘하고 치열해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장면 뒤로 요동치는 고백의 형상을 보게 한다.
이러한 고백은 갈수록 고군분투로 변해간다. 그리움도 원망도 아쉬움도 아닌 감정의 터널을 지나 마지막 장을 열면 산문 한 편이 실려 있다. 예측이 가능한 미래와 불가능한 미래, 그 앞에서 인간과 시가 할 수 있는 일에 관해 시인은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용기 내기 어려운 일들은 보통 불확실한 결말을 갖는다. 그러나 시인에게 결말은 얼마나 중요할까. ‘예측 불가능한 미래’ 앞에서 담담해야 하는 것이 생활의 수행인 반면 ‘예측 가능한 미래’ 앞에서도 요동치는 것은 시의 본분이다. 시의 핵심은 결과로서의 미래값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잇는 매 순간에, 현재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순간순간의 마음에 전력을 다하는 것은 시인의 바람직한 수행인 동시에 사랑의 수행이 된다.
어쩌면 오늘만 사는 사람들이 시와 사랑을 잘 만드는 건 아닐까. 책을 덮으며, 사랑을 쥐고 제주도로 향하던 친구의 용기를 생각했다. 그곳에서 편지처럼 보내 오던 귤 맛을 떠올렸다. 무모하고 사치스럽게 여겨지던 시도로부터 결실을 맺은 사람들은 늘 주변에 있었다. 그들과 함께라면 삶을 사용해 시를 읽고 쓰는 사치를, 이 사랑을 현재진행형으로 겪어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안 된다는 말만 하지 말고 / 다 끝난 후에 함께 손을 씻자고 약속해줘. / 사랑을 다 해낸 후에 소매를 걷어줘. / 비누 묻힌 손으로 내 손을 감싸줘. // 문을 열면 / 나무는 숱이 많아진다.”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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