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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데 멀쩡한 척 산다고?... 일상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입력
2025.03.07 12: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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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지 시집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편집자주

결혼은 안 했습니다만, 시집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시인.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신이인이 사랑하는 시집을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선생님/ 제가 사랑이 없습니다// 일요일의 교회 앞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뭐라고? 내가 애인이 있었다고?/ 벌떡 일어나 외쳤는데/ 가게에 혼자라는 걸 알고/ 다시 조용히 의자에 앉았습니다" ('오늘 서울 날씨')

시를 읽고 쓰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그리 완전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시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가진 이들의 좋은 친구다. 일상의 모든 부분에 만족하고 무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어쩐지 서점 구석의 얇은 시집들에 관심을 쏟을 것 같지는 않다. 세상이 소외시키기 쉬운 자리에서 얄팍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어느 정도 점지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시와 가까워지는 데에 남다른 소수자적 기질이 필요한 것일까? 전혀 아니라고 단언해본다. 오히려 평범한 삶을 살수록 시가 재미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평범한 삶'이란 다음과 같다. 호수를 바라보면서 아무 생각이 없는 삶, 사랑이 없고 애인이 없는 삶, 고장 난 사람처럼 야구만 보는 삶, 거래처와 인사말을 나누다 실수하는 삶, 자꾸 병명이 늘어나는 삶…

"삼청공원에/ 딱따구리 소리를 들으러 갑니다/ 위기의 중년이 되었기 때문에"('새를 구함')

우리는 가끔 평범함과 특수함을 구분하지 못한다. 나만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고, 나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 작아진다. 나만 아픈 것 같을 때는 특히 서럽다. 한번은 회사를 다니며 고생하는 내게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을 해준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몸도 마음도 유별나게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었던지라 순간 세계관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던 적 있었다. 아니, 다 이렇게 힘든데 멀쩡한 척 살아가는 거라고? 난 또, 다 괜찮아 보여서 나만 이상한 줄 알았잖아.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남현지 지음·창비 발행·136쪽·1만2,000원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남현지 지음·창비 발행·136쪽·1만2,000원


남현지 시인이 전하는 일상의 실체는 이처럼 보편적이면서 생소하다. 명료하게 맺어지는 문장에는 미사여구가 없다. 보통의 사람들이 느낄 법한 무심함, 무언가 모자라다는 감각, 멋지지 않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적어낼 뿐이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일상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폭로와도 같다. 읽어보면 다 아는 내용이라 마음이 가고 위안도 된다. 여기에서 희망 대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위트다. 미화의 여지를 탐색하기보다 은은한 웃음을 개발하려는 자세, 어두운 유머의 매력을 시인은 알고 있다.

"아줌마 싫어해요?/ 괜찮아요/ 아줌마도 싫어하는 것이 많고// 이제 당신도 그중의 하나가 되겠지"('복도식으로')

웃어넘기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 삶이 있다. 가라앉아 있지만 심각해지긴 싫고 억지로 들뜨기에도 마땅치 않은 상태가 있다. 세상은 이런 것에 '건강하지 않다'는 딱지를 붙일 수도 있겠으나 이 딱지는 기실 평범함의 증표가 된다는 것을,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은 역설한다. 뼈 있는 유쾌함을 섞어가면서.

신이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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