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국회 내란국정조사특위 현장조사에 불참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조사에 일체 불응한 데 이어, 국회 증언마저 거부한 것이다. 또 윤 대통령 측은 4일 헌법재판소에 변론기일 주 1회 축소를 요청하고, 법원에 구속취소를 신청했다. 온갖 법 기술을 동원해 탄핵 심판과 내란 조사에 대한 '물 타기' 의도를 점점 노골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4일 헌재 탄핵심판에서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불법 계엄 혐의 자체를 부인하고 나선 것과 기조를 같이한다. 윤 대통령은 당일 탄핵 심판 문답 등을 겨냥해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를 쫓아가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국회의원 체포 등 계엄에 따른 실질적 결과가 없으니 계엄의 불법성을 따지는 것조차 부당한 것 아니냐는 궤변을 시도한 셈이다. 하지만 계엄에 따른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애써 외면하는 윤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국가 지도자직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개탄스럽다는 비판이 많다.
불법 계엄의 국가적 실질 피해는 막대하다. 당장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글로벌 안보·경제 시스템 자체가 연일 격동하고 있음에도 정부 수반 공백에 따른 대미 외교 지연이 심각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계엄사태로 인한 소비 위축 등으로 지난 4분기 성장이 급감하면서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0.2%포인트 하락했다. 계엄사태가 없었다면 생산됐을 6조3,000억 원의 부가가치가 손실됐다는 얘기다. 환율 상승과 주가 하락 등 금융시장 충격을 논외로 쳐도 그렇다.
'법꾸라지' 행태에 더해 탄핵 심판 과정에서 국가지도자로서,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격마저 버린 듯한 모습은 국민적 자괴감까지 일으킬 정도다. ‘정치인 체포’ 지시 관련 증언에 나선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에 대해 양손을 거칠게 휘젓고 책상을 내리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심판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홍 전 차장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외면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이 있겠지만, 망가지는 대통령을 직시해야 하는 국민에겐 큰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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