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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가 된 악보 10만 점… 더 많은 연주가 쇤베르크를 되살린다

입력
2025.02.09 16: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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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의 클래식 노트]
21세기에 만나는 쇤베르크 음악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쇤베르크 초상화. 위키피디아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쇤베르크 초상화. 위키피디아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레오폴트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을 소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는 격변기 문화 예술의 비약적 발전을 잘 보여준다. 1900년대 빈은 세기말을 거치며 다양한 문화, 민족이 어우러지면서 예술은 물론 20세기를 정의하는 수많은 사상이 쏟아져 나왔다. 문명의 변화 앞에 환호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질적인 것에 대한 혐오와 불관용, 진영 논리가 팽배했던 모순의 시기였다.

음악사에서는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큰 변화를 이끌어낸 구스타프 말러와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시기 요한 슈트라우스의 4분의 3박자 왈츠 리듬과 자크 오펜바흐, 프란츠 레하르의 유쾌한 오페레타는 긴장을 풀어주는 완충재로서 사랑받았다. 반면 빈에서 가장 독창적이었던 안톤 브루크너, 후고 볼프와 말러와 쇤베르크는 보수적 평단으로부터 지독하리만큼 혹평을 받았다. 이들은 서로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든든한 지지자가 됐으며 각자의 창작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아르놀트 쇤베르크. 위키미디어 커먼스

아르놀트 쇤베르크. 위키미디어 커먼스

그중 쇤베르크는 제자들인 안톤 베베른, 알반 베르크와 함께 제2빈악파를 결성, 12음기법 창안으로 20세기 현대음악사의 방향을 크게 바꿔놓았다. 은행원, 화가로도 활동했던 쇤베르크는 에곤 실레, 리하르트 게르스틀, 오스카 코코슈카와 같은 화가들은 물론 문학가들과도 교류하며 조성과 오선지 안에 갇혀 있던 음악의 형태를 확장 혹은 해체시켰다. 하지만 말러의 교향곡이 점점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과 달리 쇤베르크의 작곡 방식은 '현대음악은 난해하다'는 인식의 시발점이 되며 청중으로부터 멀어졌다.

물론 쇤베르크 초기 작품 중 현악 6중주곡(혹은 현악 합주곡) '정화된 밤'처럼 한없이 아름다운 곡도 있다. 이 곡은 독일 시인 리하르트 데멜의 시집 '여자의 세계' 중 발췌한 시로 쓴 표제음악이다. 또 클래식 작품 중 최대 편성을 가진 '구레의 노래'는 덴마크 작가 옌스 페테르 야콥센의 시집 '선인장 꽃은 피다'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작곡했다. 무조시대에 작곡한 '달에 홀린 피에로', 오페라 '모세와 아론'에 이르면 일부 관객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노래하기'와 '이야기하기'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서사는 음악극의 외연을 확장시키며 또 다른 감상법을 경험하게 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러한 음악 어법이 청중이 즐겨 들을 수 있는 음악인가는 물음표로 남아 있다.

힐러리 한이 재조명한 쇤베르크 바이올린 협주곡

힐러리 한의 '쇤베르크 &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 표지.힐러리 한의 '쇤베르크 &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 표지.

힐러리 한의 '쇤베르크 &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 표지.힐러리 한의 '쇤베르크 &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 표지.

쇤베르크에게 바이올린 협주곡 악보를 전해 받은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는 "연주 불가"라며 퇴짜를 놓았는데, 시대를 앞선 작곡가의 작품은 시간이 흘러 작곡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에게 닿았다. '정화된 밤'을 연주하며 쇤베르크 음악의 가능성을 발견한 한은 새로운 운지법을 익히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과 '쇤베르크 &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2008년 그라모폰 어워즈 '베스트 클래시컬 앨범'상을 받았고, 빌보드 차트에서 3주 동안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감히 말하지만 이 성과는 시벨리우스의 협주곡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은 앨범 라이너 노트에 "쇤베르크는 바이올린 협주곡에 기품과 기지, 서정주의와 낭만주의, 극적인 드라마를 엮어냈다. 연주 이후 쇤베르크의 접근 방식은 내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어떤 작품이든 천천히 집중하며 곡을 배우는 방법을 터득했고, 단계에 따라 테크닉을 향상시키고, 수준별로 개념을 해석하는 법을 배웠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것을 무대 위에 올렸을 때 21세기 청중은 발을 구르며 환호했다.

쇤베르크의 가곡 '마음의 무성함' 악보. 위키미디어 커먼스

쇤베르크의 가곡 '마음의 무성함' 악보. 위키미디어 커먼스

오스트리아 태생 유대인이었던 쇤베르크는 1933년 나치 집권으로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 보스턴에서 처음 교수직을 맡은 후 1944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교수로 재직했고, 남캘리포니아주립대(USC)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생을 마감할 때까지 로스앤젤레스(LA)에서 거주하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최근 LA 화재로 소실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많다.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파블로 피카소 등 고가의 미술품은 물론 쇤베르크의 아들이 운영하던 벨몬트 출판사 건물이 전소되면서 쇤베르크의 악보 약 10만 점과 장서와 편지, 사진을 비롯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유품들이 소실됐다. 물질적 형태로서 존재하는 미술품은 소실되면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없지만, 악보는 그 곡을 연주하는 사람에 의해 새로운 가치가 생겨난다. 더 많은 연주자들이 악보로 존재해 오던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를 기대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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