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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머문 이방인 말러… 음표로 그린 복잡다단한 감정의 감동

입력
2025.02.23 14: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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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의 클래식 노트]
KBS교향악단·서울시향이 선보인 말러 교향곡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KBS교향악단이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지휘로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한 뒤 협연자인 메조 소프라노 이단비, 소프라노 황수미와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KBS교향악단 제공

KBS교향악단이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지휘로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한 뒤 협연자인 메조 소프라노 이단비, 소프라노 황수미와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KBS교향악단 제공

낭만주의와 현대성을 아우르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은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자 전 세계 교향악단의 실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레퍼토리다. 대규모, 대편성으로 예술적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장엄함과 서정성, 세속적 선율이 공존하며 다채로운 매력을 만들어낸다. 이는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죽음과 가까운 환경에서 절망감을 극복하려는 작곡가 개인의 이야기가 반영된 것이다. 작곡가의 인생과 철학이 녹아든 말러의 교향곡은 현대인에게 점점 더 큰 공감을 얻어 가고 있다.

말러는 체코 보헤미안 지방 태생의 오스트리아인으로, 훗날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이었다. 어디에서도 이방인이었고, 환영받지 못했다는 말로 자신을 표현했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속함으로써 안정을 추구하려 하지만, 말러는 자신을 구성하는 환경의 다양성과 불안정한 요소를 그대로 가져다가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게 된다. 동생들의 이른 죽음이 만든 두려움을 작품 곳곳에 심어 놓고, 죽음의 고통과 슬픔을 가만히 바라본다. 염세적이지만 이상향을 꿈꾸고, 인생에는 비극도 있다고 얘기하면서 자연과 우주, 천상의 세계를 동시에 꿈꾼다.

구스타프 말러와 아내 알마. 위키미디어 커먼스

구스타프 말러와 아내 알마. 위키미디어 커먼스

말러는 교향곡 전반에 성악 독창자와 합창을 등장시킨다. 악기도 노래하고 있지만, 언어를 태운 사람의 목소리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한다. 교향곡 2번 '부활'에는 알토, 소프라노 독창과 혼성 합창이 4·5악장에 등장하고, 교향곡 3번에는 인간과 자연, 신성에 대한 주제를 위한 알토 독창, 여성 합창, 어린이 합창이 나온다. 교향곡 4번 4악장에서는 소프라노 독창으로 천상의 음악을 표현한다. 아내 알마에게 헌정한 대편성의 교향곡 8번 '천인 교향곡'에는 '위대한 환희와 영광 찬양'이라는 주제 표현을 위해 혼성 합창단, 소년 합창단, 8명의 독창자가 출연한다. 칸타타처럼 성악가들이 구체적인 '배역'을 갖고 노래하는 한 편의 드라마인 셈이다.

교향곡 9번을 쓰기 전, 말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을 거부하며 이상향으로서 '동양'을 동경하게 됐다. 한스 베트게가 번역한 '중국의 피리' 시어로 6악장짜리 교향곡적 가곡 '대지의 노래'를 만드는데, 교향곡의 번호를 붙이지 않은 이 작품에서는 테너와 알토(혹은 바리톤) 독창이 노래한다. 현악기, 관악기와 어우러진 사람의 목소리에는 그만의 독창성이 있다. 말러의 가곡 역시 교향곡과의 경계를 허물며 상호보완적으로 만들어졌다. 프렌치 호른과 오보에, 금관악기, 타악기의 색채감과 볼륨감,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긴 호흡은 피아노 반주에서는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말러의 교향곡과 가곡은 모두 뛰어난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리고 이 전체 흐름을 이해하는 성악가가 더해졌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서울시향이 2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지휘로 말러 교향곡 7번을 연주한 뒤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서울시향이 2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지휘로 말러 교향곡 7번을 연주한 뒤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교향악과의 균형 중요한 말러의 성악"

KBS교향악단이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지휘로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한 뒤 협연자인 메조 소프라노 이단비, 소프라노 황수미와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KBS교향악단 제공KBS교향악단이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지휘로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한 뒤 협연자인 메조 소프라노 이단비, 소프라노 황수미와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KBS교향악단 제공

KBS교향악단이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지휘로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한 뒤 협연자인 메조 소프라노 이단비, 소프라노 황수미와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KBS교향악단 제공KBS교향악단이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지휘로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한 뒤 협연자인 메조 소프라노 이단비, 소프라노 황수미와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KBS교향악단 제공

지난주 계관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KBS교향악단과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이끄는 서울시향이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과 7번을 각각 연주했다. 교향곡 2번의 협연자로 나섰던 소프라노 황수미는 이렇게 말했다. "말러 교향곡은 삶과 죽음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불러야 하는데, 오케스트라와의 음악적인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아요. 베토벤이나 멘델스존의 교향곡 내에서의 솔로 연주는 내 목소리로 주도해야 한다는 느낌이 있지만, 말러는 악기들이 모두 중요하고 층이 많잖아요. 악기로도 충분히 표현하지만 성악 파트 역시 더없이 순수한 그 자체의 이상적인 그림을 노래해야 합니다. 말러 교향곡은 과한 욕심이 드러나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이 먼저인지, 가사가 먼저인지 생각하게 되죠."

오래전 영화지만 각종 영화제 상을 휩쓸었던 '가면 속의 아리아(Le Maitre De Musique·음악선생)'에는 슈만, 베르디, 모차르트, 로시니, 슈베르트, 벨리니를 포함해 말러 가곡과 교향곡이 흐른다. 음악선생 조아킴과 소프라노·테너 제자가 부르는 노래는 선곡만으로도 장면 묘사가 이뤄지도록 세밀하게 구성돼 있다. 바리톤 호세 반 담이 조아킴으로 출연해 노래한 말러의 '뤼케르트 시에 의한 5개의 가곡' 중 3곡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네'와 제자 장(Jean)이 노래한 '대지의 노래' 중 3곡 '젊음에 대하여'가 등장한다. 스승의 죽음과 젊은 제자의 새 출발을 대비시킨 두 곡과 인물 간의 복잡한 감정이 오갈 때 흐르는 말러 교향곡 4번 3악장은 언제 다시 들어도 먹먹해지는 감동이 있다. 경계에 머물러 있던 이방인 말러의 음악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수많은 감정을 끌어안는 힘이 있다. 그의 음악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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