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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달리3·이유지 기자](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5/02/12/031dcdb9-3891-4122-b0d0-a83d81790b97.png)
그래픽=달리3·이유지 기자
'사과 한 개 6,000원, 배 한 개 1만 원···.'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으로 값이 폭등한 '금(金)사과'가 원망을 샀다면, 올해는 배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지역·등급에 따라 개당 1만 원에 달할 정도다. 배추, 무 값도 전년 대비 각각 67%, 80% 뛰었다. 웬만한 가계 사정으론 장바구니에 담을 엄두가 나지 않는데, 더욱이 엥겔지수1가 높은 저소득층엔 기호를 떠나 건강까지 우려케 하는 문제다.
넉넉한 이들에겐 치솟은 과일·채소 가격은 대수롭지 않은 '남의 일'로 느껴질 수 있겠다. "사과가 없으면 망고를 먹으면 된다"는 말도 절반은 맞는 얘기다. 다만 왜 비싸졌는지 한꺼풀 벗겨보면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이 보인다. 가격이 오른 식품들은 이례적인 한파, 폭염, 집중호우 등 이상기상으로 작황에 영향을 받은 공통점이 있다. 말하자면, 기후위기의 전조인 셈이다.
먹거리 물가 상승 정도로 문제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좀 더 심각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다음 차례는 기상현상의 양극화, 대형 재난의 빈발이다. 기상청은 산불 발생 빈도가 늘고 규모가 커진 강원 동해안 일대가 '기후 채찍질'을 겪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양상과 유사하다고 분석한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50년이면 전 세계 산불이 30%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강릉에서 2023년 4월 발생한 산불은 무려 축구장 530개 면적인 379헥타르(㏊) 규모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2년 가까이 지났지만 불에 타버린 집 대신 임시거처로 옮긴 이재민 수십 가구가 올해도 컨테이너 안에 텐트를 쳐가며 한파와 싸우고 트라우마를 견디고 있다. 화마뿐 아니라 홍수, 태풍 등 여러 기후재난이 '나의 일'이 돼도 하릴없는 일이다.
나아가 학계에선 기후변화에 재배적지, 생산량이 줄어 발생하는 식량위기가 전쟁을 유발할 가능성도 언급한다. 특히 외국 식량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더 위태롭다. 2023년 식량자급률은 49%, 곡물자급률은 22.2%에 불과했다. 게다가 기후 등쌀에 농어민들은 땅과 바다를 포기하는 실정이다. 앞서 쌀 생산 타격으로 곤욕을 치른 중국, 일본이 시급히 식량안보 관련 법을 손본 이유다.
당장은 밥상의 위기인 '기후플레이션2'이 이 모든 미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지난해 세계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55도 상승해 기후재앙 한계선을 넘어섰다. 기후위기를 취재하며 가장 자주 느낀 것은 지구의 6번째 대멸종 주인공이 인류가 될 수 있다는 절망이었다. 희망적인 부분은 대기 중 탄소 포집 등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는 물론 개인에 이르기까지 탄소중립, 기후변화 적응 노력은 절실하다.
인류가 답을 찾아낼 때까지, 부디 버텨야 할 것이므로.
- 1 엥겔지수
- 가계의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
- 2 기후플레이션
-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극한 날씨로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식료품 물가가 오르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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