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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건으로 군사재판을 받을 당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법원이 10·26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판을 다시 열기로 했다.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이 피고인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구타와 전기고문 등의 폭행과 가혹 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이유에서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뒤 불과 7개월 만에 사형에 처해져 그 동안 ‘강압수사 졸속재판’ 논란이 많았다. 김 전 부장이 숨진 지 45년,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한 지 5년 만에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늦었지만 이제라도 실체 규명의 계기가 마련된 건 의미가 적잖다.
당시 김 전 부장에 대한 재판은 총체적으로 문제였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민간인이었던 김 전 부장이 육군본부 계엄 보통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은 것부터 잘못이었다는 게 변호인단 입장이다. 과정도 기소 한 달 만에 1심 선고가 나올 정도로 속전속결이었다. 더구나 보안사령부가 재판부에 수시로 ‘쪽지’를 전달하는 등 직접 개입 정황까지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며 드러났다. 유족들은 김 전 부장이 고문은 물론 협박에 시달려 정당한 방어권 행사도 어려웠다고 밝혔다. 안동일 변호사는 ‘재판이 아닌 개판’, ‘권력자의 시간표에 따른 재판’이었다고 증언했다. 모두 법치국가에선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대통령이 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허욕이 빚은 사건'이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김 전 부장은 최후 진술에서 “각하는 갈수록 애국심보다 집권욕이 강해졌다”며 “더 이상 국민들이 당하는 불행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어떤 명분과 이유로도 사람의 목숨을 앗은 죄를 정당화할 순 없다. 그러나 김 전 부장이 실제로 내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범행한 것인지는 재심 과정에서 규명돼야 할 대목이다. 이는 단순히 김 전 부장의 명예회복과 유가족의 한을 푸는 데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과정을 온전하게 기록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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