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유니버스]
<3> 광장 동원력, 비주류가 실세로
부임 후 점점 거칠어진 尹의 발언들
"자유통일당 강령과 비슷해져" 지적
"尹 대신 싸워줄 전광훈과 손잡은 것"
편집자주
매주 광화문에서 음모론을 설파하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원로목사가 탄핵 정국 이후 극우 정치의 정점에 섰다. 한국일보는 이른바 '애국시민'들의 헌금을 종잣돈 삼아 언론부터 쇼핑·금융·통신까지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전광훈 유니버스'의 실태를 파헤쳤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원로목사는 전국을 돌며 집회 형식을 빌린 '자유마을 대회'를 열어 지지자들을 모으고 있다. 자유마을은 극우 성향 단체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가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의 지역 조직이다. 대국본의 포스터
"나는 가지만 당은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으니 종북 주사파에 단호히 맞설 때 우리도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
지난달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체포되기 직전 자신을 찾아온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종북 주사파' 척결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겼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한 여권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 '주사파'라는 극우 망령에 단단히 꽂혔다"며 "대통령 발언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원로목사가 고문으로 있는 자유통일당 강령과 다를 바가 없다"며 씁쓸해 했다.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두 달 이상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시민들은 희한한 공생 관계를 목도하고 있다. '철 지난 색깔론'에 경도된 윤 대통령과 음모론과 막말을 서슴지 않던 전광훈 목사의 '화학적 결합'이다.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던 윤 대통령은 새해 첫날 대국민 사과 대신 관저 인근에서 집회를 하던 보수단체에 A4 용지 한 쪽 분량의 편지를 전했다.
집회 참석자를 '애국시민'으로 호명한 윤 대통령 편지에는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며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여러분과 함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적었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이 "광장에서 대신 싸워달라"고 전광훈 목사를 향해 손을 내민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실제로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까지 가세했다. 윤상현 의원은 탄핵 반대 집회 연단에 서서 전 목사를 향해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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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5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전광훈 사랑제일목사가 주최하는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전 목사에게 인사하고 있다. 전 목사 유튜브 캡처
'주사파' '반국가세력' 끊임없이 반복
윤 대통령 발언이 자유통일당 강령과 유사해진 부분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자유통일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4대 건국정신인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 입국론에 입각해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강병 정신을 계승하는 정통 애국정당'을 표방한다. 강령에는 '대한민국을 망친 주사파들을 척결하기 위해 반주사파법을 제정해 촛불 문화를 척결하고 전교조와 민노총을 해산한다'고도 적혀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10월 19일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 간담회에서 처음으로 '종북 주사파'라는 용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당시 대통령실은 헌법정신과 '국가 보위' 책무를 강조한 거라고 설명했지만, 자리를 함께했던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뜬금없고 수위가 센 발언이라 다들 수근수근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원외 당협위원장까지 모두 참석한 자리이니 공동의 적을 만들어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취지로 이해하고 넘어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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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대훈 기자
윤 대통령이 지칭한 '종북 주사파'와 '반국가세력'의 범위는 야당으로 확대됐다. 2023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선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고 일갈했다. 광복절 축사에 '반국가세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2024년엔 국무회의에서도 반국가세력이 언급됐다. 윤 대통령은 3월 26일 국무회의에서 "반국가세력들이 국가안보를 흔들고 국민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띄우기도 본격화했다. 국가보훈부는 이 전 대통령을 '이달의 독립운동가(2024년 1월)'로 선정해 발표했고, 국방부는 그에 앞서 2023년 12월 정신전력교육 기본 교재를 개편하며 이 전 대통령 이름을 15번이나 명시했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을 선포한 것도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윤 대통령은 12월 12일 대국민 담화 때 재차 "대한민국을 간첩 천국, 마약 소굴, 조폭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반국가세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서로 다른 부정선거 얘기하다 합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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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5차 변론기일인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 5번 출구 앞에서 열린 탄핵각하 촉구 집회에서 대통령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전광훈 목사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부정선거 음모론도 계엄 선포의 결정적 이유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전 목사와 윤 대통령이 제기하는 부정선거 의혹은 차이가 있다. 전 목사는 작년 4월 총선에서 자유통일당이 원내에 진입할 수 있는 득표율(3% 이상)을 얻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2.26%밖에 얻지 못하자, 그는 사랑제일교회 유튜브 '천만 아침 조회 방송'에서 "북한이 이번 선거에 개입했다고 본다. 부정선거 밝혀내라. 이거 아니면 나는 이제 윤석열 대통령과 결별하려고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약 65만 표를 얻었다. 자유마을이 전국에 3,518개 있는데, 그러면 동네별로 약 185표가 나와야 한다"며 "184표 이하가 나온 지역 투표소는 다 부정 투표"라고 날을 세웠다. 자유마을은 전 목사가 우파 논리를 설파하려 전국 읍·면·동 단위에 만든 공동체 조직이다. 자유마을과 총선 선거구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이 문제 삼은 부정선거 의혹은 지역구 투표지에 비례대표 투표지가 일부 겹쳐서 인쇄된 이른바 '배춧잎 투표지' 등과 허술한 선거관리시스템, 중국·북한 등 외부세력 개입설 등이다. 뿌리가 다른 여러 음모론이 합쳐지며 눈덩이처럼 커졌고, 실제 부정선거가 있었던 것처럼 선동하고 있는 셈이다.
"둘의 만남은 악순환의 상승작용"

1월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가 윤 대통령 체포 전 마지막 메시지를 시청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주연 기자
극단으로 향하는 윤 대통령과 전 목사에 대한 평가는 박절하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은 정치적 색깔이 없는 상태에서 정치를 시작해 보수에 뿌리를 내렸고, 총선 참패와 김건희 여사 문제 등이 부각되자 점점 극단으로 향한 것 같다"며 "전 목사는 돈이 필요했고, 윤 대통령은 계엄 지지 세력이 필요했는데 '공공의 적'을 만들며 두 사람이 손을 잡은 셈"이라고 분석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도 "윤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의 타개책으로 극우 세력과 결탁했다"며 "당장은 이해관계가 맞아 손을 잡았지만 악순환의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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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광훈 그룹' 지배 구조 해부
<2>'애국 가스라이팅'과 절대 순종
<3> 광장 동원력, 비주류가 실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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