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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을 북핵 문제 중재자로 만든다면…

입력
2025.03.08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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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요동치는 국제 상황에서 민감도가 높아진 한반도 주변 4개국의 외교, 안보 전략과 우리의 현명한 대응을 점검합니다.



젤렌스키 망신, 한국도 재연 가능
한·러 관계 복원 가능성 주목해야
적을 친구로 만드는 지혜 필요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며 J.D. 밴스 부통령의 얘기를 듣고 있다. 이날 정상회담은 설전 끝에 파행으로 조기 종료됐다. AP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며 J.D. 밴스 부통령의 얘기를 듣고 있다. 이날 정상회담은 설전 끝에 파행으로 조기 종료됐다. AP

탈무드에는 "진정한 강자는 적을 친구로 만드는 사람"이라는 구절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한 지난 2주간의 외교 활동 소용돌이를 보면서 전 세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친구로 만들려는 것 아닌가 생각했을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협상 주체에서 빼고 평화협상을 시작했으며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책임도 유럽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미국의 안전보장을 확보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의 광물협정 시도마저 트럼프와의 공개적 언쟁만을 남기고 결렬되었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보면서 언론은 우리와 같은 지정학적 단층국인 우크라이나에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한국도 북핵협상에서 패싱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포용 행동의 의도는 공약대로 전쟁을 조기 종식함으로써 정권 초기 외교 업적을 과시하고, 러시아와의 갈등을 해결하여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에 더해 관심을 가질 사항은 두 가지다. 첫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를 포용하여 중러 사이를 떼놓는 소위 ‘역키신저(reverse Kissinger)’ 의도가 있는가이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 희토류 개발 협력을 제안하였다. 희토류 수입의 7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는 미국에 러시아가 희토류를 제공하게 된다면 중국에는 큰 타격이다. 그러나 미국 기업의 러시아 투자환경 불신과 러시아의 대중 경제 의존성, 국제정치의 불확실성을 볼 때 ‘역키신저’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아직 희박하다.

둘째는 미국의 시급한 현안인 중동문제와 북핵문제 해결에 러시아와 협력할 가능성이 있는가이다. 2월 18일 리야드 평화협상에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 대신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가 참석한 것은 트럼프의 이런 의도를 보여준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축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러시아는 종전 협상에서 트럼프의 양보만큼 중동 문제 해결에서 미국을 지원할 능력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 북핵 문제에서 미러 간 협력 가능성은 아직 적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러 관계가 혈맹 수준에 이른 만큼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전쟁 지원에 대한 러시아의 부채 의식이 적지 않고,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그 가능성은 아직 적다. 물론 평화협상 결과가 미러 모두에 만족할 만한 수준에 도달한다면 협력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우크라이나 평화협상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 과정에 우리 정부가 해야 할 과제는 우크라이나에 파견된 북한군 철수와 ICBM 기술 등 군사기술 제공 금지가 협상 타결에 포함되도록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전면 외교에 나서는 것이다. 북러 밀착의 쇠퇴만큼 한러 관계 복원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아가 미러의 관계 개선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에 대비한 대러 관계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푸틴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면 북핵문제 해결의 새로운 외교적 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회는 만드는 것이다.



엄구호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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