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함민복 '내 눈에 무지개가 떴다'
장석주 '또르르 똑똑 빗방울 삼형제'
창비청소년시선 '도넛을 나누는 기분'

게티이미지뱅크
"마음속에도 연못이 있습니다. 동심이 파 놓은 연못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설렘과 푸른 호기심이 늘 출렁거립니다. 그 투명한 연못이 비춰 준 무지갯빛 생각의 춤들을 여기 시로 옮겨 보았습니다."
벌써 세 번째 동시집 '내 눈에 무지개가 떴다'를 펴낸 함민복 시인의 소회다. 중견 시인이 어린이 독자를 겨냥한 동시를 짓는 이유는 뭘까. 시를 쓴 지 쉰 해 만에 첫 동시집 '또르르 똑똑 빗방울 삼형제'를 이달 출간한 장석주 시인의 말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동시와 시는 한 쌍이다. 동시가 시의 웃음이자 시의 원형질이라는 게 내 믿음이다. 또한 동시는 아이의 기쁨이자 어른의 기쁨이어야 한다." 시인들이 밀도 높은 언어로 벼려 온 동시로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봄에 읽기 좋은 동시집과 청소년시집을 소개한다.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동시

내 눈에 무지개가 떴다·함민복 지음·사계절 발행·84쪽·1만3,000원
"네 몸을 나오자마자/ 깨끗한 물에 몸을 씻는 건/ 너를 더럽게 생각해서가 아냐// 이제 너를 떠나 새로운 세계/ 흙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그래서 몸단장을 좀 했어"
'내 눈에 무지개가 떴다'에 수록된 동시 '똥탑'은 이렇게 시작한다. 똥이 우리 몸을 빠져나가며 건네는 작별 인사다. "사실, 우리를 똥이라고 부르는 너의 몸은/ 우리 음식물들이 오랫동안 누운 똥이야/ 우리가 소중한 목숨을 바쳐 쌓은 탑이야" '너'(몸)는 그날 우리가 먹은 음식물이 층층이 쌓아 올려진 똥탑이라는 것. 그러니 "조심조심 착하게 잘 살아/ 우리 간다"고 당부까지 남긴다.
유머를 통해 확장된 상상력은 우리 눈앞에 믿음직한 세계를 펼쳐놓는다. 하물며 우리 몸도 똥이 쌓이고 쌓인 탑인데, 삶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 함민복의 동시를 읽으면 "세계를 관계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우경숙 아동문학평론가)고 하는 이유다. 자신의 삶이 다른 이들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결됐다고 믿는 감각, 즉 타자의 세계를 공감할 수 있는 능력과도 통한다는 얘기다.
"웃고 있는 아기를 보면/ 따라 미소가 번지고/ 울고 있는 할머니를 보면/ 따라 눈물이 나고/ 하품하는 아저씨를 보면/ 따라 입이 벌어진다// 웃음, 울음, 하품은/ 금세 사람들과 나를 연결해 주는/ 보이지 않는 신기한/ 끈인가 보다"('나도 몰래')
"또르르 굴러온 작디작은 한 알 속 크디큰 이야기"

또르르 똑똑 빗방울 삼형제·장석주 지음·자음과모음 발행·96쪽·1만5,000원
'또르르 똑똑 빗방울 삼형제'는 1979년 등단 이후 100권 넘는 저서를 쓴 장석주 시인의 생애 첫 동시집이다. 2015년 쓴 시 '대추 한 알'을 소재로 한 동명의 그림책이 인기 끈 것을 계기로 "남녀노소 함께 읽는 아름답고 도타운 말의 세계를 전하고자" 첫 동시집을 내놨다.
장 시인의 동시에는 보잘것없이 조그마한 대상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화자가 등장한다. 감기약 한 알부터 염소 똥, 눈, 겨울나무까지 예사로 보아넘기지 않는다. "손에서/ 놓친/ 감기약 한 알// 저 혼자 또르르/ 굴러/ 장롱 밑에 숨었네// (…) 감기약은/ 어쩌다/ 그 괴물의 소굴로 들어갔나?// 감기약은/ 하얗게 질린 채/ 장롱 밑에/ 숨어 있겠네"('감기약 한 알')
어린이의 입말을 살려 동심의 세계를 노래하는 동시들이 눈에 띈다. "달걀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 봐요// 달걀이 조용한 건/ 병아리가/ 잠든 탓일걸요"('달걀 한 알') "동생이 감기에 걸렸어요/ 밤새 콜록콜록// (…) 엄마 나도 감기약 주세요/ 감기약 먹고/ 동생 곁에 누워 있을게요"('감기약')
"청소년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쓴 시"

도넛을 나누는 기분·김소형 김현 민구 박소란 박준 서윤후 성다영 신미나 양안다 유계영 유병록 유희경 임경섭 임지은 전욱진 조온윤 최지은 최현우 한여진 황인찬 지음·창비 발행·212쪽·1만3,000원
'도넛을 나누는 기분'은 황인찬, 박준, 박소란, 유희경 등 젊은 시인 20명이 청소년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3편씩 써서 엮은 '시 꾸러미'다. '청소년시'라는 새 갈래를 열며 2015년 출범한 창비청소년시선의 50번째를 기념한 시집. 교과서에 실린 어른의 시 대신 청소년도 동시대의 좋은 시를 읽고 즐겨야 한다는 취지로 앞서 49종의 시집을 선보였다. 이 중 오은의 '마음의 일', 나태주의 '너에게도 안녕이' 등 8종은 1만 부 넘게 판매됐다.
"앞을 밀며/ 앞을 밀며// 나아가"(유계영 '거북의 세계')면서 "기쁨과/ 슬픔의/ 모양에 대해 골몰"(양안다 '공동체')하고 "어떻게 해야/ 세계 평화가 이뤄질까/ 지구가 아름다워질까/ 생각하기에도 바쁜"(유병록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청소년들의 고민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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