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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만을 위한 법

입력
2025.03.14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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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루스코니, 자신 방어 목적 특별법
세 차례 만들어...모두 헌재가 무효화
권력자 한 사람만 위한 법 적용은 문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2018년 4월 로마에서 세르조 마타렐라 당시 이탈리아 대통령과 회담 후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2018년 4월 로마에서 세르조 마타렐라 당시 이탈리아 대통령과 회담 후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박해받는 사람이다." 2023년 세상을 떠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2009년 밀라노에서 자신의 부패 혐의에 대한 재판을 앞두고 한 말이다.

미디어 재벌이자 유럽 최고 갑부 중 하나였던 그는 2차(2001~2006년), 3차(2008~2011년) 임기 내내 사기와 부패로 인한 법적 문제에 시달렸다. 그는 재판에 당당하게 임하는 대신 매번 '좌파 사법부에 의해 탄압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법을 세 차례나 만들었다.

2003년 베를루스코니의 여당은 총리를 비롯한 4대 고위 공직자가 재직 중 형사 기소를 받지 않도록 한 '로도 스키파니법'을 통과시켰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모든 시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에 대한 과도한 예외"라며 위헌으로 판단하자 2008년 '로도 알파노법'이라는 이름의 거의 동일한 법을 다시 통과시켰다. 이마저 위헌 결정이 나자 2010년엔 총리가 "필수적인 정부 활동"을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할 수 있도록 하는 '합법적 장애물법'을 만들었다. 이탈리아 헌재는 불출석 사유가 발생할 경우 매번 법원이 정당성을 판단하도록 결정함으로써 이를 무력화했다.

총 9년여의 장기간 총리를 지낸 베를루스코니는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을 모두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사법부, 특히 헌재는 압력에 굴하지 않고 계속 독립적 판단을 내렸다. 결국 베를루스코니는 2013년 세금 사기로 유죄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베를루스코니에게 'NO'를"이란 구호 아래 100만 명이 로마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이탈리아 국민들의 분노도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 사회는 엄청난 분열과 혼란을 겪었다. 만인을 위한 법이 아니라 한 사람을 위한 법이 계속 제정되면서 법 체계에 대한 불신도 깊어졌다. 주요7개국(G7)의 일원인 이탈리아의 세계 속 위상도 추락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취소 과정에서 벌어진 '구속기간 산정 방식' 논란은 '한 사람을 위한 법 해석'이란 측면에서 이탈리아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판사는 그동안 모든 국민에게 '날' 단위로 적용해 왔던 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해 달라는 변호인 측 주장을 이례적으로 수용했다. 검찰은 기존 관행을 완전히 뒤엎는 판결에도 항고하기를 포기하더니, 앞으론 다시 '날'로 계산한다고 한다. 시간 단위 산정은 말 그대로 윤석열 단 한 사람을 위한 법 적용 사례로 남게 됐다.

12·3 불법 계엄 후 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측의 궤변이 계속되면서 '한 사람만을 위한 법' 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12일 헌재에 국민의힘 82명 명의의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설령 계엄이 헌법 또는 법률 위반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탄핵) 기각 결정을 해주실 것을 청구한다"고 말했다. 일반인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해도 똑같이 얘기할 건가? 그럼 대한민국은 무법천지가 될 것이다.

'법 앞의 평등'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권력자에게 특별한 법적 대우를 제공하는 순간 이 원칙은 무너지고 법치주의는 치명적 손상을 입는다. 우리 헌재도 이탈리아처럼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단호한 판단을 하길 기대한다.

최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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