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길어져, 올 1분기 경제도 빈손
주류 정당 당내 극단 세력 정리 못하면
경제활동 근간 예측 가능성 회복 어렵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가운데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상윤 기자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이 역대 최장까지 길어지면서 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느닷없는 계엄 선포 직후 원화가치가 급락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최저를 기록한 것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 일주일간 해외 투자자들이 급히 돈을 빼면서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144조 원이 증발했다. 그때 얼어붙은 소비 심리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으며, 수출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줄곧 부진하다.
계엄으로 인한 경제 피해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 조사를 바탕으로 이를 추정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4분기 성장률을 0.5%(이하 전 분기 대비)로 전망했는데, 실제 성장률은 0.1%에 그쳤다. 그 결과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전망치보다 2조7,000억 원 감소했다. 올해 성장률도 예상보다 0.2%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 감소분이 4조6,000억 원으로, 총 7조3,000억 원이다. 탄핵심판이 길어지면서 올해 1분기 내내 정치 혼란이 계속돼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최근 투자은행 노무라는 당초 0.6%였던 한국 1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0.1%로 하향하는 등 해외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전망이 현실화하면 한국은 지난해 2분기 이후 4분기 연속 0.1% 이하 성장이 이어진다. 2020년 코로나19,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물론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없었던 장기 침체다.
탄핵정국이 마무리되면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있었던 2017년 2월과 비교해 보자. 당시 1분기 0.9%였던 성장률은 2분기 0.6%로 더 떨어졌다가 3분기 1.5%로 반등을 이뤘다. 결국 연초 2.6%로 예상했던 연간 성장률은 3.16%까지 상승했다. 당시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집권에 대외환경이 어려웠으나 반도체 수출 증가와 글로벌 경제 회복이 경제 숨통을 틔웠다. 하지만 올해는 거세진 글로벌 보호무역 바람에 대외 환경은 더 어둡다. 한계에 도달한 가계부채와 8년 전보다 높은 금리 등으로 내수 역시 쉽게 회복하기 힘들다.
탄핵정국이 마무리되면, 가장 시급한 문제가 경제를 제 궤도로 돌려놓는 일이다. 그런데 이는 경제 정책만으로 불가능하다. 계엄으로 훼손된 사회 전반의 신뢰 회복 없이는 경제의 기반인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각한 국민 분열 치유가 최우선 과제인 이유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직전 찬성률이 79%까지 올랐지만, 윤 대통령 탄핵 찬성률은 58%다. 윤 대통령 탄핵 사유가 훨씬 분명하고 심각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 분열 강도는 숫자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크다. 반대하는 당에 대한 불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잘못을 눈감아줄 정도로 강하다.
국민 통합은 정당과 지지자들이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다음 선거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상대 당에 대한 신뢰가 회복돼야 가능하다.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계엄 이후 비민주적 언동을 해온 세력의 분명한 사과가 필수다. 이를 거부할 경우 정당 스스로 당내 비민주 세력을 단호히 정리해야 한다. 비민주 세력이란 헌법 체제 공격을 선동하고, 반대 여론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려는 모든 세력이다. 특히 주류 정당 내에서 그 정당을 양극단으로 몰아가려는 세력에 대한 확실한 배제가 중요하다.
탄핵 이후 경제 회복의 열쇠를 경제가 아니라 정치가 쥐고 있다. 정치권에 관용과 대화, 협상이 자리 잡는다면, 정책은 물론 사회 전반에서 신뢰와 예측 가능성이 회복된다. 최장의 경기침체에서 탈출하고 2025년이 2017년보다 나아지려면, 그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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