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외교문서 '민감국가' 지정 대책회의
외무부-과기처-상공부 관계부처 합동 총력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앞세워 비핵화 의지 강조
미국 '산업 스파이' 주요 감시국에 한국 포함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민감국가 지정과 관련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미국은 30년 전에도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앞세우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강조하며 치열하게 대응논리를 세웠던 것으로 확인됐다. 관계부처가 총력전을 펼친 끝에 명단에서 뺐지만, 미국이 왜 한국을 지목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최근 비밀해제된 '제1차 한미 과기공동위원회 관계부처 대책회의' 문건에 따르면, 1993년 12월 10일 외무부(현 외교부)와 과학기술처, 상공자원부를 주축으로 범정부차원의 협의가 진행됐다. 미 에너지부(DOE)의 민감국가 목록에 한국이 포함되자 대응논리를 마련하는 자리였다.
회의 결과 정부는 △한국은 미국과 정치·군사적 동맹관계이고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이며 △비핵화 선언을 통해 핵에너지의 평화적인 사용에 관한 정책이 투명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로 했다. 아울러 한국을 북한과 같은 민감국가로 분류하는 것은 부당하며 한미 과학기술협력에 장애요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특히 정부는 1991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선언'과 1992년 남북 간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주요 근거로 내세웠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원칙을 천명했고, 핵연료 재처리 및 농축시설 보유까지 포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DOE가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발전용 농축우라늄을 공급해왔고 1993년 7월까지 고리·영광 원자력발전소용 우라늄 공급의 계약 당사자였다는 점을 거론하며 핵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농축우라늄을 민감국가에 제공하는 것은 일관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핵능력 수준을 탈탈 털리면서까지 핵무기 개발 의지가 없다고 고해성사를 한 셈이다.
당시 정부는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된 원인을 1970년대 핵개발 시도로 분석했다. 회의를 앞두고 열린 외무부 중심의 정부 대책회의에서 과기처는 "미 에너지부는 1981년부터 내부 규정을 시행 중이며, 우리나라는 1981년 1월 5일 규정 최초 시행 때부터 포함돼 있다"고 했는데, "핵무기개발과 관련해 1970년대 우리 핵정책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미국으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DOE 규정에 '국가안보', '핵 비확산', '국내 불안정', '테러리즘' 등이 사유로 적시돼 있었는데, 정부 대책회의 발언을 보면 "한국이 이 가운데 어떤 이유로 지정됐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후 미국은 한국을 1994년 민감국가 목록에서 제외했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한국을 계속 감시 대상국으로 분류해 주목해 온 정황이 외교문서에 담겨있다. 미국 국가정보국 산하 국가방첩센터(NCC)가 미 의회에 제출한 '대외 경제 및 산업스파이에 대한 보고서'에는 에너지와 기술분야에서의 '스파이' 문제를 지적하며 한국을 중국, 일본, 프랑스와 함께 경계 대상인 '주요 수집국'으로 분류했다.
한국을 원자력 분야의 산업 스파이 활동 국가로 낙인찍어 관찰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한국이 과거 핵 개발을 시도했고, 현재까지도 원자력 협정 개정을 줄곧 요구해온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이 지난 1월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재차 올린 배경에 국내에서 번지는 핵무장 담론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문의에 "미국 에너지부는 한국이 민감국가 목록에 없었어도 한국에 대한 기술이전 과정에서 핵 개발 관련성을 고려해 굉장히 주시했을 것"이라며 "미국은 민감국가 목록에 있든 아니든 비확산을 정책 목적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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