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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먹어야 할 황후의 디저트

입력
2025.02.01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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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편집자주

열심히 일한 나에게 한 자락의 휴식을… 당신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방법, 음식ㆍ커피ㆍ음악ㆍ스포츠 전문가가 발 빠르게 배달한다.

딸기롤 ⓒ이주현

딸기롤 ⓒ이주현

새빨갛고 탐스러운 외관. 추운 겨울부터 따듯한 봄까지 제철을 맞는 과일. 지금은 한창 딸기의 계절이다. 딸기는 여러 음식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은 존재감을 뽐낸다. 덕분에 외식업계는 이 시기만 되면 딸기를 활용한 음식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베이커리는 물론 각종 디저트류, 식사류에도 딸기가 거침없이 등장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봄소식을 알리며 상큼 발랄한 주인공 역할을 맡는 딸기. 요즘은 상업적인 과일로 단단히 자리를 굳혔지만, 과거에는 조금 더 묵직하고 신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딸기처럼 얇은 껍질, 풍부한 과즙, 작은 종자를 가진 과일을 장과류로 분류한다. 장과류에는 석류, 포도, 무화과, 다래 등이 속한다. 과연 이 작고 앙증맞은 과일들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었을까.

작은 씨가 빼곡하게 들어찬 모습이 딸기와 흡사한 과일이 있다. 장과류에 속하는 석류이다. 석류의 무수히 많은 씨들은 자손을 번창하게 만든다는 의미로 여겨졌다. 덕분에 축하연이나 시집가는 딸의 혼수품에서 수놓아진 석류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석류는 딸기와 달리 꽃과 열매, 속에 든 씨껍질까지 모두 붉은색이다. 과거 우리 민족은 이 붉은 기운을 신성하게 여겨 액운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면 집 안에 석류나무를 심기도 했으며, 문갑이나 장롱에도 석류 그림을 새기곤 했다. 석류는 집 안의 중요한 대소사를 무탈하게 준비하기 위한 필수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장과류에 속하는 다른 과일은 어떨까. 앙증맞은 모양새의 포도는 병을 낫게 한 과일이었다. 과거에 포도는 무척 귀했다. 그만큼 왕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포도를 무척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목이 마를 때마다 포도를 아껴서 한두 알씩 먹곤 했다. 달콤한 포도 과즙이 몸에 활력을 주었던 걸까. 포도를 먹자 태조가 앓던 질환이 나았고 신하에게 상으로 쌀 10섬을 하사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세종 역시 포도를 먹고 병이 나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의 포도는 단순히 과일을 넘어서 건강을 지켜주는 약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주렁주렁 알이 매달린 포도 역시 석류와 마찬가지로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백자에는 포도 문양이 자주 발견된다. 주목할 점은 포도알 뿐만 아니라 덩굴도 함께 그려져 있다는 것. 덩굴을 의미하는 '만대(蔓帶)'는 '만대(萬代)'와 음이 같다. 이런 이유로 대대로 자손이 번성하기 바라는 염원을 담아 포도와 덩굴을 꼭 같이 그렸다.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장과류 과일은 약으로 쓰이곤 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딸기를 '황후의 과일'이라고 불렀다. 상류층이 약용으로 먹었기 때문이다. 딸기는 90%가 수분이지만 단백질을 비롯해 각종 비타민이 들어있다. 종합영양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이 계절 우리가 딸기를 꼭 챙겨먹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딸기롤 ⓒ이주현

딸기롤 ⓒ이주현

생으로 먹어도 맛있는 딸기지만, 몇 번의 간단한 손길만 거치면 완성되는 근사한 홈디저트를 소개한다.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딸기롤'이다. 먼저 식빵을 밀대로 납작하게 밀고 가장자리를 자른다. 그 후 한쪽 면에 크림치즈를 골고루 바른다. 식빵 끝에 딸기를 나란히 한 줄로 놓고 돌돌 말아준다. 마지막으로 비닐랩으로 꽁꽁 싸서 냉장고에 10분간 보관하면 빈 틈 없이 재료끼리 잘 밀착된다. 손에 힘을 빼고 한 입 크기로 썰면 마음까지 화사해지는 딸기롤이 완성된다. 입으로 먹기 전 눈으로 한 번 더 즐거운 요리이다. 게다가 우리 집의 나쁜 운을 막아주며 약을 먹는 것처럼 건강에도 이로울테니,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 더 없이 잘 어울리는 과일이 아닐는지!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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