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 尹, 버티면 된다는 착각
與 "인간의 도리", 표 구걸만
'파탄의 입구' 착각, 깨어나길
착각은 어디에나 있다. 또한 언제나 있다. 팩트가 뭔가. 초년 기자 때부터 수없이 캐물음을 당했다. 지금은 따져 묻는 입장이지만, 그제나 이제나 쉽게 답은 못 한다. "이게 사실이야"라는 말 한편으로, 착각의 그림자가 똬리를 틀고 있단 생각 때문이다. 높고 낮은 가능성 혹은 확률에서, 더불어 위험성의 감도에서 차이는 있겠지만.
요즘 뉴스에 착각이란 단어를 자주 떠올린다. 최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진의 면회를 받았다. 비상계엄 선포를 극구 말렸다는 정진석 비서실장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을 포함, 대통령실 측근 5명이 그를 찾았다. 윤 대통령은 이들에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국정의 중심", "의기소침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와 함께.
"잘 지낸다"는 속 쓰린 말 여분으로 10년 전쯤 충청의 한 허름한 2층 호프집을 생각해냈다. 몇 명의 무리, 그 중심에 생맥주를 훌쩍이던 '좌천 검사'가 있었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때 그 검사는 매우 사나웠다. 오징어를 한 입 뜯어 물고, 맥주를 마시는 사이사이 험한 말들을 쉬지 않고 터뜨렸다. 검사의 결기를 짓누르던 '윗것들'에 대한 분노가 응어리진 가슴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이후 대통령이 되고 구속된 최초의 현직이 되기까지, 그 광기의 표정과 말들을 다시는 직접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어쩌면, 지금 오징어를 뜯으며 술 한잔할 기회가 또 생긴다면, 그때와 다르지 않을 거라 짐작한다. 이번에 그는 대통령의 애국을 막아서는 '반민주세력' 야당과 '경고성 계엄 선포'에 책임을 묻겠다는 목소리에 '억울한 피해자'라고 외치며 분노할 것이다.
작년 12월 3일 이후 두 달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사과 한 번이 없었다. 그는 불법 비상계엄을 여전히 "국회를 향한 경고성 계엄"이라 말한다. 확신에 차 시도 때도 없이 부정선거 의혹을 거론하며, 차가운 거리로 나온 지지자들에게 "함께 싸우자"고 한다. 지방의 한직을 돌던 그때처럼 '좋은 날'이 언젠가 다시 올 것이라 믿으며 버텨 보자는 자세다.
여기에 여당 국회의원도 가세한다. "인간의 도리"를 운운하며, 못난 대통령을 버리긴커녕 그에게 기대며 표를 구걸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착각. 국가 시스템이 국회와 법원 유리창처럼 깨지고 금 가도 일단은 나부터 살아야 한다는 듯이.
고인이 된 시인 허수경은 착각을 '파탄의 입구'라 명명했다. 시인은 착각이란 단어에서 '광기(狂氣)에 이르는 착란(錯亂) 상태에 대한 예감'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끄집어냈다. 그리고 "착각에 머물다가 홀연히 깨어나는 것은 행운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한시라도 빨리 대통령이 착각과 미몽에서 벗어나길 기대해 보지만, 시인이 말하는 행운은 안타깝게 쉽게 올 것 같지 않다.
시인은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므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란 문장으로 끝맺었다. '입춘'이라는 시집 안 다른 시에서는 '사람이 사는 마을, 개 짖는 소리 들린다'고 적었다. 전혀 행복하지 않은 나는, 시집을 덮으며 "사람 사는 마을, 짖는 개 소리"만을 반복해 중얼거렸다. 원문의 단어 순서가 뒤바뀐 채로, 시인의 의도는 알 바 아니라는 듯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