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난동 생중계로 후원금 챙기고
대통령 체포 생중계는 슈퍼챗 대박
혼란기 선동으로 돈 버는 유튜버들
1988년 10월 16일 전국에 무장 인질극이 생중계됐다. 지강헌을 비롯한 네 명의 탈주범들은 TV 카메라 앞에서 사회에 대한 울분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주택에서 일가족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이었다. 지강헌은 560만 원 훔친 자신에겐 17년형을 선고하고, 온갖 비리로 수백억 원을 챙긴 대통령의 동생(전경환)에겐 고작 7년형을 내린 불공평한 세상을 '생방'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질극은 총성과 함께 비참하게 끝났지만, 생중계가 남긴 여운은 길었다.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TV 화면 속 흉악범의 넋두리는 눈부신 경제 성장 과정에서 소외돼 온 약자의 한숨이자, 있는 자들이 사법 정의까지 왜곡하는 부조리에 대한 일갈로 해석되곤 했다. '범죄의 미화'라는 시각도 있지만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36년이라는 긴 시간을 관통해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2025년 새해 눈을 의심케 하는 범죄가 생중계되면서 온 나라가 들썩였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구속 영장이 발부된 지난달 19일 새벽 윤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경찰을 폭행하고 청사 내 사무실과 집기를 무차별 파손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난동 장면들은 극우 유튜버들에 의해 실시간 생중계됐다.
시위대는 입맛에 맞지 않는 법은 무시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무법무죄 유법유죄'의 신념으로 똘똘 뭉쳤고, 극우 유튜버들이 이들을 부추겼다. "국민저항권이야 XX! 들어가 들어가. 이거 민주화 운동이야!" 생방송 중 시위대를 선동한 것도 모자라 폭력사태에 적극 참여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들이 이처럼 생중계에 '최선'을 다한 이유는 결국 돈이었다. 격렬한 저항, 속 시원한 멘트가 슈퍼챗과 후원금을 부른다는 건 이 바닥의 기본 생리다.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법원 난동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와중에도 상당한 액수의 후원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는 이날 생중계로만 700여만 원의 슈퍼챗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따라 수익을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선동하지 않았어도 국가적 혼란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진보 좌파 유튜버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을 생중계하고 수천만 원의 수익을 올린 유튜버도 여럿이다.
12∙3 불법계엄으로 시작된 범죄 혹은 범죄적 행위의 생중계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에 대해 집단 폭력을 서슴지 않는 극우 시위대와 이를 선동하는 세력, 직원들을 동원해 영장 집행을 방해하는 경호처 지휘부, 고도의 ‘법기술’과 온갖 궤변으로 사법 시스템을 흔드는 윤 대통령과 변호인들의 모습을 생방송으로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지강헌이 한 말로 알려졌지만 실제 누가 한 말인지 알 수 없다. 기억이 역사로 기록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남은 것이라 추정할 뿐. 36년이 지난 2025년 생중계 화면 속 범죄적 장면들이 남긴 것은 분노와 허탈감, 그리고 유튜버들의 계좌에 착착 꽂힌 슈퍼챗 수익뿐이다. 웃기지도 않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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