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블랙핑크의 따로 또 같이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그룹 블랙핑크의 리사(왼쪽부터)와 지수, 제니, 로제가 지난해 8월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영등포점에서 진행된 ‘본 핑크 인 시네마스(BORN PINK IN CINEMAS)’ 핑크 카펫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그 어느 해보다 그룹 블랙핑크 소식이 자주 전해지고 있는 2025년이다. 불과 1년여 전 소속사와의 재계약 문제로 향후 그룹 활동이 불분명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기존 소속사와는 그룹 활동만 함께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이들은 계약 정리와 동시에 차례로 개인 소속사를 설립했다. 세계적인 스타이니만큼 음악 외적인 활약도 돋보이지만, 이전에 비해 음악 활동이 부지런해진 것이 특히 눈에 띈다.
멤버 줄줄이 솔로 발표

14일 오후 2시 발표한 걸그룹 블랙핑크 지수의 솔로 미니음반 '아모르타주(AMORTAGE)'. 연합뉴스
새해가 시작되고 불과 한 달 사이, 새로운 소식이 말 그대로 ‘쏟아졌다’. 제니는 3월 공개할 앨범 '루비(Ruby)'의 선공개 곡 ‘젠(ZEN)’의 뮤직비디오와 미국 싱어송라이터 도미닉 파이크(Dominic Fike)와 함께 부른 ‘러브 행오버(Love Hangover)’를 발표했다. 얼마 전 열린 제67회 그래미 신인상 후보이자 가장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인 래퍼 도치(DOECHII)와의 협업도 21일 공개 예정이다.
리사는 지난 6일 역시 올해 그래미 신인상 후보 영국 싱어송라이터 레이(RAYE), 래퍼 도자 캣(Doja Cat)과 호흡을 맞춘 노래 ‘본 어게인(Born Again)’을 공개했고, 지수는 14일 첫 솔로 앨범 '아모르타주(AMORTAGE)'를 선보였다. 가창은 물론 음악 작업과 퍼포먼스, 비주얼 디렉팅 전반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로제는 독특하게도 반가운 역주행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연말을 뜨겁게 달군 히트곡 ‘아파트(APT)’가 국내 음악 차트 장기 집권은 물론 해외 차트에서 일명 ‘역주행’ 바람을 불러온 것이다. 미국 빌보드 핫 100차트 3위, 영국 오피셜 차트 2위까지 순위를 올리며 장기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K팝 신에서 솔로 활동이 그룹 활동만큼이나 중요해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활발한 솔로 활동은 그룹 운영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다수의 멤버가 한 몸처럼, 가족처럼 활동해야 하는 K팝 그룹의 특성상 멤버 한 사람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것이 단체 생활에 여러모로 해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과거에는 제약이 더 심했다. 1세대 K팝 그룹이 솔로 활동은 해당 멤버가 그룹에서 탈퇴하거나 그룹이 해체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룹과 개인 활동의 병행이 가능하고, 그것이 서로 좋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업계의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수많은 도전이 이어졌다.
블랙핑크는 오래 갈 수 있을까

걸그룹 블랙핑크의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아파트'. 더블랙레이블 제공
블랙핑크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더 복잡했다. 솔로 활동에 호의적 인식이 높아진 건 분명했지만, 블랙핑크라는 이름의 무게감이 너무 무거워진 탓이었다. 블랙핑크 완전체 활동 여부에 따라 소속사의 명운은 물론 K팝의 미래 예측이 기우뚱거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쉽게 상상하기 힘든 긍지와 부담 사이 먼저 걸음을 뗀 건 블랙핑크에 3년 앞서 데뷔한 그룹 방탄소년단이었다. 멤버들의 군복무로 인한 공백기에 앞서 차례로 뚜껑을 연 이들의 솔로 작업은 멤버 각자의 개성을 뚜렷하게 담은 일곱 개의 온전한 새로운 세계였다. 세기의 팝스타를 향한 야망, 동경해 온 신에 대한 애정, 익숙함에서 오는 안정과 새로운 도전 사이 그 누구도 쉽사리 장담하지 못했던 그룹의 미래가 또렷해졌다. 생각보다 더 오래, 이 그룹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연이어 공개되는 블랙핑크의 솔로 작업을 보며 정확히 같은 생각을 했다. 이들은 함께 오래 가기 위한 레이스의 출발점에 이제 막 섰다. ‘나의 소녀들’을 위한 경전 같은 주문을 외는 ‘잇 걸(It Girl)’에서 신라 금관과 신화를 몸에 두른 초월적 존재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제니, K팝과 팝이라는 고루한 말장난이 다 뭐냐는 듯 확고한 싱어송라이터 정체성으로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로제, 자신 안에 깊숙이 박힌 태국과 힙합이라는 키워드를 양손에 검처럼 휘두르며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는 리사, 그리고 이제 곧 자신의 색깔을 만천하에 공개할 지수까지. 모두가 그토록 찾아 헤맨 제2의 블랙핑크는 어쩌면 자기 모습으로 우뚝 선 네 사람이 지금부터 만들어 갈 블랙핑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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