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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구 축제 도시는 지금... '모두가 평등한' 뜨거운 여름밤

입력
2025.03.05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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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라이밀파크에 알전구가 은은하게 불을 밝힌 가운데, 축제 참가자들이 들뜬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남반구 최대 예술축제인 애들레이드 프린지는 지난달 시작해 이달 23일까지 계속된다.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라이밀파크에 알전구가 은은하게 불을 밝힌 가운데, 축제 참가자들이 들뜬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남반구 최대 예술축제인 애들레이드 프린지는 지난달 시작해 이달 23일까지 계속된다.


따가운 햇볕이 나른한 도시에 무방비로 쏟아졌다. 지난달 22일 낮 최고기온 39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주도 애들레이드 시내 중심부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휴일이라 자동차도 거의 없는 한산한 도로에 이따금씩 전차가 지나고 있었다. 땀이 줄줄 흐르고 숨쉬기 힘든 무더위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습도가 거의 없어 그늘로 들어서면 살짝 상쾌함이 느껴질 정도였다.극한 기온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낮 시간 잠잠하던 도시는 어둠이 내리면 슬슬 기지개를 켠다. 도심 곳곳에 축제의 불이 켜지고, 불볕 더위를 피해 숨어있던 시민들이 부나비처럼 축제장으로 모여든다. 여름의 끝자락인 2월 말부터 약 한 달간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등하다” 모든 이들을 위한 예술축제

1960년부터 시작된 애들레이드 프린지는 남반구 최대의 예술축제다. 어떤 자료는 세계 3대라 하고 현지 관계자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버금가는 세계 2대 축제라고도 했다.

축제의 취지를 보면 순위에 집착하는 게 무의미해 보인다. “우리는 평등하다(WE'RE EQUAL)”. 애들레이드 프린지가 내세운 슬로건이다. ‘축제 참가자, 행사 진행자, 공급업체 및 계약자에 대한 차별이나 무례한 행동에 대해 절대 관용하지 않는다’는 표현도 덧붙였다.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는 게 이 축제의 제일 원칙이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 금기에 도전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의 본령이라는 점에 충실한 셈이다.

애들레이드 프린지 공연 안내판. 축제 기간 1,200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애들레이드 프린지 공연 안내판. 축제 기간 1,200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애들레이드 라이밀파크 글루터니 구역에서 시민들이 밤 축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애들레이드 라이밀파크 글루터니 구역에서 시민들이 밤 축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기야 ‘프린지(Fringe)’란 말 자체가 주변부 문화를 대변하는 표현이다. 사전적으로는 숄이나 스카프 끝에 다는 장식을 의미한다. 가장자리 풀림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돼 고대 여러 복식에서 사용됐는데, 후에는 관직이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프린지는 주변부 예술가들의 축제다.

애들레이드는 도시 자체가 축제를 열기 좋은 구조다. 빅토리아광장을 중심으로 정방형으로 구획된 도심을 넓은 공원이 감싸고 있다. 도심에서 걸어서 20분이면 보태닉가든을 비롯해 라이밀파크, 빅토리아파크, 킹스턴파크 등에 닿을 수 있고, 프린지도 이들 공원에 설치된 무대에서 주로 열린다.

축제 기간 도시 전역과 주변에 500여 개의 공연 무대가 차려지고 1,200여 가지 음악, 연극, 서커스, 코미디, 마술쇼 등이 열린다. 세계에서 8,000여 명의 예술가가 이 도시를 찾고, 100만 장의 티켓이 판매된다고 한다. 음식으로 치면 길거리 간식부터 고급스러운 파인다이닝까지 총망라한 셈이어서 누구나 입맛에 맞게 골라 즐길 수 있다.

애들레이드 출신 4인조 보컬 ‘The 60 Four’가 1960~70년대 명곡을 열창하고 있다.

애들레이드 출신 4인조 보컬 ‘The 60 Four’가 1960~70년대 명곡을 열창하고 있다.


애들레이드 프린지에서 성소수자로 구성된 멤버들이 서커스 공연을 펼치고 있다.

애들레이드 프린지에서 성소수자로 구성된 멤버들이 서커스 공연을 펼치고 있다.


애들레이드 프린지의 서커스 공연에서 불쇼를 펼치고 있다.

애들레이드 프린지의 서커스 공연에서 불쇼를 펼치고 있다.


축제가 막 시작된 지난달 22일 오후가 되자 라이밀파크의 글루터니(Gluttony) 구역으로 시민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다. 분위기에 들뜬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를 목마와 유아차에 태운 가족,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물결을 이룬다. 호수 주변과 잔디밭에 차려진 부스마다 들뜬 표정의 시민들이 맥주잔을 부딪치며 슬슬 분위기를 달구고 있었다.

원형 천막 공연장에서 ‘The 60 Four’가 첫 무대를 열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히트곡을 재현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애들레이드 출신 4인조 보컬그룹이다. 약 1시간 동안 비틀스, 비치보이스, 비지스, 퀸 등 당대를 주름잡았던 팝 스타의 명곡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다소 촌스러운 복고풍 춤사위와 어우러진 매혹적인 음색에 중장년 관객의 환호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축제의 밤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옆 천막에서는 성소수자(LGBTQ)로 구성된 서커스공연이 이어졌다. 트랜스젠더 가수의 열창으로 시작해 불쇼와 공중곡예, 인간탑쌓기 등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힘센 남성의 도움으로 호리호리한 여성이 화려한 묘기를 펼치는 일반적인 서커스와 달리 남녀의 역할에 구분이 없었다. 다양성을 지향하는 애들레이드 프린지의 단면을 보여 주는 공연이다.

은은한 조명이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라이밀공원을 밝히고 있다.

은은한 조명이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라이밀공원을 밝히고 있다.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거리 음악 공연이 열리고 있다.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거리 음악 공연이 열리고 있다.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여행객과 시민들이 차량이 통제된 거리를 거닐고 있다.

애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여행객과 시민들이 차량이 통제된 거리를 거닐고 있다.

공연장에서 나오자 밤이 이슥해졌다. 곳곳에 은은하게 알전구가 켜지고, 차량이 통제된 거리에서는 버스킹 선율이 밤하늘로 번지고 있었다. 나른한 도시의 여름밤은 그렇게 축제의 분위기로 무르익고 있었다.

이 도시가 궁금하다면 애들레이드 센트럴마켓

애들레이드 중앙시장은 이 도시, 나아가 호주의 역사와 일상을 살필 수 있는 현장이다. 시장 입구 여인의 얼굴을 그린 벽화가 인상적이다. 백인이나 흑인도 아니고 원주민도 아니다. 원색 계열의 나뭇잎과 꽃, 과일 장식은 풍성한 대자연을 상징하는 듯하다. 애들레이드 중앙시장도 이 초상을 닮았다. 신대륙 호주는 엄밀하게 말하면 모두에게 타향이고 누구에게나 고향이다. 시장에는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위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을 대표하는 음식과 식료품점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만큼 먹거리가 풍성하고 풍경이 다채롭다.

애들레이드 센트럴마켓의 벽화. 이 도시의 다양성과 시장의 풍족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애들레이드 센트럴마켓의 벽화. 이 도시의 다양성과 시장의 풍족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애들레이드 중앙시장 한 가게에서 대형 가마솥에 스페인식 쌀밥 파에야를 요리하고 있다.

애들레이드 중앙시장 한 가게에서 대형 가마솥에 스페인식 쌀밥 파에야를 요리하고 있다.


한 가족이 애들레이드 중앙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 가족이 애들레이드 중앙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애들레이드 중앙시장의 알제리 커피점.

애들레이드 중앙시장의 알제리 커피점.


76개 점포 중에는 알제리인이 운영하는 커피점, 레바논인의 단과자 가게, 네팔인이 운영하는 팔라펠 가게, 프로슈토를 비롯한 다양한 육가공 제품을 판매하는 이탈리아 고깃집, 캄보디아 가족이 운영하는 채소가게 등이 섞여 있다. 캥거루섬에서 생산한 꿀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 생맥주처럼 신선한 우유를 유리병에 내려 담아 판매하는 유제품 가게는 대자연의 풍족함을 보여주는 가장 호주다운 가게다.

애들레이드 중앙시장은 1869년에 문을 열었다. 유럽인들이 이곳을 개발하기 시작한 게 1836년이었으니 도시의 역사나 다름없다. 현지 여행사(ausfoodtours.com)의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시장에서 여러 나라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고, 이동하는 길에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오래된 건물 내부도 살펴볼 수 있다.

아름드리 수목이 우거진 애들레이드 보태닉가든.

아름드리 수목이 우거진 애들레이드 보태닉가든.


애들레이드 보태닉가든에서 검은머리흰따오기 한 마리가 한가롭게 먹이 사냥을 하고 있다. 호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다.

애들레이드 보태닉가든에서 검은머리흰따오기 한 마리가 한가롭게 먹이 사냥을 하고 있다. 호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다.


애들레이드 보태닉가든에서 호기심 어린 아이들이 설치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작가 치훌리의 설치작품이 다음 달 29일까지 밤마다 조명을 밝힌다.

애들레이드 보태닉가든에서 호기심 어린 아이들이 설치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작가 치훌리의 설치작품이 다음 달 29일까지 밤마다 조명을 밝힌다.


개인적으로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보태닉가든이 제격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아름드리 나무가 하늘을 덮고 있다. 사막에서 자라는 키 큰 선인장도 곳곳에 서 있다. 호수와 잔디밭에는 검은머리흰따오기가 도망도 가지 않고 여유롭게 먹이를 잡고 있다. 산책로가 깔끔하게 정비된 공원이지만 자연이나 다름없다. 낮 시간은 무료로, 밤에는 20호주달러(약 1만8,2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다음 달 29일까지 미국의 유리 예술가 치훌리의 설치작품이 불을 밝히기 때문이다.

애들레이드 보태닉가든 인근의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아트갤러리.

애들레이드 보태닉가든 인근의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아트갤러리.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박물관에 호주 원주민(애보리진) 사진이 걸려 있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박물관에 호주 원주민(애보리진) 사진이 걸려 있다.

보태닉가든은 애들레이드대학 캠퍼스와 연결되고 인근에 고풍스러운 건물의 갤러리와 박물관, 도서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느긋하게 쉬며 호주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곳이다.

호주 와인의 본고장 맥라렌베일

애들레이드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맥라렌베일(McLaren Vale)은 호주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이다. 낮은 구릉으로 연결되는 도로 좌우로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지중해성 기후와 적합한 토양, 시원한 바닷바람이 와인용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춰 1850년대부터 포도농사가 시작됐다.

애들레이드 인근 맥라렌베일 풍경. 도로 좌우로 포도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애들레이드 인근 맥라렌베일 풍경. 도로 좌우로 포도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맥라렌베일의 다렌버그큐브 와이너리. 살바도르 달리의 진품 뒤에 세워진 큐브 모양의 건물은 애들레이드 소개 자료에 자주 등장한다.

맥라렌베일의 다렌버그큐브 와이너리. 살바도르 달리의 진품 뒤에 세워진 큐브 모양의 건물은 애들레이드 소개 자료에 자주 등장한다.


다렌버그큐브는 내부도 초현실적이다. 독특한 디자인의 남자 화장실.

다렌버그큐브는 내부도 초현실적이다. 독특한 디자인의 남자 화장실.


다렌버그큐브의 와인블렌딩 체험. 진행자가 드라이아이스로 효과를 내고 있다.

다렌버그큐브의 와인블렌딩 체험. 진행자가 드라이아이스로 효과를 내고 있다.


80여 개 와이너리와 레스토랑, 숙박시설이 밀집한 이 지역에서 다렌버그큐브(d'Arenberg Cube)는 상징적인 존재다. 포도밭 한가운데에 큐브를 엇갈라 쌓아 놓은 모양의 건물이 눈길을 잡는다. 입구에는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시간의 고귀함(Nobility of Time)’ 진품이 세워져 있다. 내부도 초현실적이긴 마찬가지다. 건물 한 개 층을 할애해 달리의 또 다른 작품을 전시해 놓았고, 와이너리의 역사를 알리는 전시는 오래된 서부영화처럼 고전적이다. 원색의 소파와 화장실 장식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꼭대기 층은 전망대 겸 체험시설이다. 3가지 와인 중 입맛에 맞는 2가지를 적정한 비율로 섞어 나만의 와인을 만든다. 창 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포도농장을 보고 있노라면 흐물흐물 흘러내리는 달리의 시계처럼 한없이 늘어지고 싶어진다.

와이너리 주인장 체스터 오즈본은 복잡한 와인 제조 과정이 마치 큐브를 맞춰 나가는 것과 비슷해 이런 모양의 건물을 고안했다고 한다. 늘어진 금발에 물방울 무늬 복장, 분홍빛 하트 모양 선글라스만 봐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다.

맥라렌베일의 매슬린비치. 거대한 퇴적암 절벽이 호주 대륙의 단면을 보여 주는 듯하다.

맥라렌베일의 매슬린비치. 거대한 퇴적암 절벽이 호주 대륙의 단면을 보여 주는 듯하다.


맥라렌베일 인근 매슬린비치. 호주 대륙처럼 광활하고 웅장하다.

맥라렌베일 인근 매슬린비치. 호주 대륙처럼 광활하고 웅장하다.


맥라렌베일 인근 매슬린비치에서 시민들이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고 있다.

맥라렌베일 인근 매슬린비치에서 시민들이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고 있다.


맥라렌베일 인근 모아나비치는 차로 들어갈 수 있는 해변이다.

맥라렌베일 인근 모아나비치는 차로 들어갈 수 있는 해변이다.

맥라렌베일은 바다와 인접해 있다. 붉은 퇴적층이 거대한 언덕을 이루고 있는 매슬린비치, 차를 몰고 들어가 야영을 즐길 수 있는 모아나비치가 가깝다. 한가롭게 해변을 거니는 주민들에게서 호주 대륙의 여유가 느껴진다. 현지 여행사(smallbatchwinetours.com.au)의 와이너리 투어에 참여하면 다렌버그와 인근 해변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취재 협조=호주관광청



애들레이드=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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