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지구촌 매혹하다③]
<3>골드 러시 뺨치는 뷰티 러시-한국
외국인 관광객 '필수 코스' 자리매김
2024년 1~11월 800만여 명 방문
접객 강화 및 글로벌몰 서비스 개편
본국 돌아간 외국인 재구매 '선순환'
또 자체 브랜드로 美·日 직접 진출
"글로벌몰과 PB 사업 경험 밑바탕
신생·중소 K뷰티 해외 진출 도울 것"
자, ‘L’ 발음 다시 한번 해볼게요. 혀가 윗니 뒤쪽에 닿게…
10일 오후 강의실에 모인 20대 남녀 30여 명이 큰 소리로 발음을 따라 하고 있었다. 강사는 파고다교육그룹의 백서이씨. 전형적 영어 학원의 풍경이다. 하지만 이곳은 서울 용산구 CJ올리브영 본사다. 수강생은 서울 종로점, 코엑스몰점 등 수도권 각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다.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올리브영이 한국 화장품 쇼핑의 성지(聖地)로 떠오르자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올리브영은 2024년 1~11월 자사 매장을 방문한 외국인이 800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외국어 강의는 격주 금요일마다 두 시간씩, 총 네 차례 진행된다. 이날 백 강사는 외국인 고객이 뭔가 찾고 있거나 중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찾을 때 등 여러 상황에 맞는 표현을 가르쳤다. 수강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리 내어 따라 하거나 노트에 적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중국어, 일어 강의도 있다"고 했다. 외국인 고객이 많은 서울 명동 일대 매장 직원들은 별도 공간에서 따로 외국어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국내 화장품 유통 시장에서 독보적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올리브영의 시선은 글로벌로 향하고 있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내수 시장은 성장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K뷰티 열풍이 세계 곳곳서 부는 지금이 해외 고객층을 넓히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게 올리브영의 판단이다. 2024년 11월 서울 성동구에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전 세계 단일 화장품 매장 중 최대 규모(4,628m²)인 '올리브영N성수'를 개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올리브영이 국내에서 외국인 접객(서비스)만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의 '올영' 쇼핑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 과제다. 본국에 돌아간 이들이 '올리브영 글로벌몰'에 접속해 K뷰티를 재구매해야 글로벌 고객의 기반이 넓어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올리브영은 ①매장을 찾는 외국인의 글로벌몰 가입을 이끌고 ②글로벌몰 서비스를 강화해 자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을 동시에 펼치고 있다.
9일 오후 서울시 중구 CJ올리브영 명동타운점 2층 세금 환급 창구 옆에는 'Welcome Gift'라고 적힌 자판기가 있었다. 일본인 여성이 자판기 QR코드를 인식, 글로벌몰에 가입해 쿠폰을 내려받은 후 이를 자판기에 갖다 대자 연두색 파우치가 나왔다. 오후 2시부터 30분간 파우치를 받아간 외국인은 12명에 달했다. 지난해 전국에 네 개뿐인 이 자판기를 통해 글로벌몰에 가입한 외국인은 33만 명이 넘는다. 여기에 최근 올리브영은 글로벌몰에서 국내 베스트 상품 랭킹 및 국내 리뷰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한국인 손님들의 후기가 외국인 고객의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글로벌몰 회원수는 2024년 8월 처음 200만 명을 돌파했다. 또 같은 해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80% 성장했다. '국내 매장 방문→글로벌몰 가입→귀국 후 재구매'의 선순환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PB 화장품으로 美∙日 공략
올리브영 글로벌 사업의 또 다른 한 축은 미국·일본 등을 중심으로 전개 중인 자체 브랜드(PB)다. 올리브영은 바이오힐보(기초), 웨이크메이크(색조) 등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현재 일본 사업은 2024년 1~11월 매출이 1년 전보다 50% 성장하며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 관계자는 "2019년 진출 이후 여러 시행 착오를 겪으며 현지화에 나선 게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가령 일본에서 판매되는 바이오힐보의 리프팅 크림 제품 광고의 핵심 메시지는 '하리카쓰유산킨(ハリ活乳酸菌∙피부 탄력을 살리는 유산균)'이다. 한국 광고에는 '볼륨' '탄력' 등이 강조될 뿐 유산균 얘기가 없다. 화장품 성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 고객을 겨냥해 맞춤형 마케팅을 펼친 것. 또 일본서 K팝 아이돌을 앞세우는 한국 브랜드와 달리 바이오힐보는 아이돌 출신 배우 가와에이 리나를 모델로 선택했다.
지난해 5월 일본에 법인을 설립한 것도 현지화 전략의 하나다. 일본 시장의 80~90%를 차지하는 오프라인 매장에 자리를 잡으려면 총판매대리점(총판)→벤더사 등을 거쳐야 한다. 매장과 직거래하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제품이 어떻게 진열되는지, 얼마나 팔리는지 등을 관리하기 쉽지 않다. 일본 사업을 맡고 있는 김민준 스페셜리스트는 "이전까진 총판에 맡겼다면 지금은 일본 법인의 현지 직원이 매장 제품 마케팅이나 시각적 판촉(VMD) 등을 챙기니 장점이 많다"고 했다.
인디 브랜드 해외 진출 돕는다
하지만 국내 신생∙중소 화장품 브랜드를 육성하는 'K뷰티 인큐베이터'라는 정체성은 유지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최근 올리브영은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수출 잠재력이 큰 인디 브랜드 20개를 찾아 글로벌 진출을 돕는 사업을 진행했다. 글로벌몰에서 K화장품을 사는 외국인 고객에게 이들 브랜드 할인 쿠폰과 샘플 등을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회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PB를 전개한 경험을 살려 인디 브랜드에 해외 진출 컨설팅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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