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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어떻게 피하나" 허위 공지에 거짓 약속...수원서 또 교묘한 수법

입력
2025.03.07 04:30
수정
2025.03.07 19:0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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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통째 강제경매 수원 다세대주택 가보니
전세 세입자 19명 22억 피해 호소...경찰에 고소
"중개사가 안심해도 된다고" 청년들 망연자실

지난달 21가구 중 20가구가 강제경매에 넘어간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 이 주택의 전세 세입자 19명은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다며 집주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이종구 기자

지난달 21가구 중 20가구가 강제경매에 넘어간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 이 주택의 전세 세입자 19명은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다며 집주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이종구 기자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픈 꿈을 접었습니다.”

지난달 24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 앞에서 만난 이영미(가명·32)씨는 이같이 말하며 울먹였다. 그는 "전세로 사는 집이 강제경매로 넘어가 중소기업취업청년 대출로 어렵게 마련한 보증금 1억2,000만 원을 떼일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일상이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법원은 이씨가 사는 다세대주택(21가구)에 대해 임의(강제)경매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씨와 같은 청년 세입자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21가구 전체를 소유한 60대 여성 A씨가 집을 담보로 받은 은행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이씨는 "전 재산을 잃고 빚더미에 앉을 생각에 꿈도 내려놨다"며 "집주인에게 송금한 수도 요금까지 3개월째 미납돼 수도까지 끊기게 생겼다"고 했다.

경기 수원시 권선구 다세대주택 세입자 19명은 22억 원대 전세사기 피해를 입었다며 집주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집주인은 임차인들에게 전체 전세보증금이 10억 원(빨간색 원 안)이라고 공지했으나 사실은 22억 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세 세입자 제공

경기 수원시 권선구 다세대주택 세입자 19명은 22억 원대 전세사기 피해를 입었다며 집주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집주인은 임차인들에게 전체 전세보증금이 10억 원(빨간색 원 안)이라고 공지했으나 사실은 22억 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세 세입자 제공


진화하는 전세사기의 덫

2023년 임차인 511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760억 원을 편취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벌어진 수원에서 또 전세사기 의혹이 터져 청년 세입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6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이씨 등 해당 주택 세입자 19명은 22억 원이 넘는 전세사기 피해를 입었다며 집주인 A씨를 경찰에 고소했는데 그중 20, 30대 청년이 18명이다. 이들은 8,000만~2억5,000만 원의 전세보증금을 A씨에게 건넸다. 경찰조사 결과 A씨와 그의 남편 B씨는 해당 주택을 포함해 수원 팔달구 매교동,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 화성시 진안동 등에 건물 14채(270여 가구)를 소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청년 세입자들을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덫에 옭아맨 수법은 교묘했다. 이씨는 지난해 5월 무려 19곳을 둘러본 뒤 그중 가장 안전할 것 같은 A씨 집을 선택했다. 그간 드러난 전세사기 사건을 접하고 무수히 발품을 팔았는데, 허위 사실이 담긴 표준임대차계약서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이씨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임대보증에 가입된 '민간임대주택'으로 표시돼 있어 안심했다"며 "그런데 이미 넉 달 전(지난해 1월) 민간임대주택 자격을 잃어 말소된 사실을 입주 후에야 알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임대사업자가 가입하는 임대보증은 전세계약이 종료되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HUG 등이 책임지는 보증상품인데, 계약서에 허위 사실이 버젓이 기재된 것이다.

수원 다세대주택 전세사기 피해 주장 청년 세입자들 진술. 그래픽=강준구 기자

수원 다세대주택 전세사기 피해 주장 청년 세입자들 진술. 그래픽=강준구 기자

A씨는 또 "대부분 월세로 전세보증금이 10억 원밖에 되지 않아 은행권 공동담보대출(7억 원)을 더해도 시세(30여억 원)에 못 미치니 안심하라"면서 불안해하는 이씨를 달랬다고 한다. 이 말은 이씨뿐 아니라 다른 전세 세입자들도 똑같이 들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이씨는 "경매 개시 결정 뒤 확인해 보니 21가구 중 19가구가 전세계약이었고, 전세보증금만 22억 원이 넘었다"고 분노했다. 담보대출과 전세보증금이 매매가(시세)에 육박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는 소위 깡통주택이었으나 A씨와 공인중개사는 이런 위험을 고지하지 않았다. 이씨는 "부동산 중개인까지 '안심해도 된다'는 식으로 부추겨 도장을 찍었다"면서 "어떻게 안 속을 수 있겠나. 이게 청년들의 잘못인가"라고 하소연했다.

"임차권 등기 의무화해 사기 피해 막아야"

같은 주택 전세 세입자 권태식(가명·29)씨도 HUG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해 주겠다는 집주인 말을 믿고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쫓겨날 처지가 됐다. 권씨는 "지난해 1월 보증금 1억5,000만 원에 전세계약을 맺을 당시 3개월 안에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기로 했으나 A씨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HUG가 같은 해 5월 가입 불가 통보를 했는데 9월까지도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가슴을 쳤다.

세입자들은 2023년 6월 시행된 전세사기특별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법에 따라 피해자로 인정돼 경매에서 우선 매수권을 행사해도 기존 전세보증금을 다 찾는 게 불가능한 데다 낙찰금과 세금 등 추가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며 "주거 사다리에 오를 수 있는 '생애 첫 주택'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집을 낙찰받기는 싫다"고 했다.

김성구 경기도전세피해지원센터 법률 상담위원(법무사)은 "계약서 등에 허위 내용을 표기하고 공인중개사까지 공모한다면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도 속는다"며 "중개 대상물의 재정 상태를 허위로 공시해 임차인을 속이는 것을 막기 위해 임차권(전·월세) 등기 의무화 등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집주인의 체납 여부, 전세사기 이력과 해당 지역 주택의 전세가율 등을 알려주는 HUG의 '안심전세포털'에서 충분한 정보를 확인한 후 계약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A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54명이 60억 원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며 사기 혐의로 A씨와 A씨 남편을 고소했다"며 "전세계약 당시 부동산 가액, 대출 잔액 등을 토대로 사기 고의성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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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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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gnonK 2025.03.07 15:13 신고
    지인이 지금 고통속에 살고있는게 인천 부평시장역 쪽 빌라인데... 1차 집주인 감방가고 2차 집주인(수제맥주 대표) 한테 소송걸었더니 2차 집주인이랑 1차 집주인 법무사가 똑같고, 소송중에 수제맥주 대표가 지 엄마로 명의 변경하고 '나는 집주인도 아닌데 이 소송은 불합리하다' 고 해서 결국 그 소송비용 다 지인이 내게 생김.. 그와중에 저 맥주대표 엄마는 1억5천만원 전세금 안줄라고 파산신청 했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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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석배 2025.03.07 09:24 신고
    서민들을 울리는 악질 사기범은 무기징역에 처해야 한다. 판사들은 흉악범은과 사기꾼들에게 제발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아끼지 말고 선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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