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추방, 본질적 존엄성 박탈"
이민자 보호 사제 대교구장 임명
백악관 "교회 업무에나 충실하길"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8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일반 청중과 2025년 첫 교리 문답을 갖고 있다. 바티칸=AP 뉴시스](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5/02/12/36ff28e4-0097-42f8-a252-36b458e3db01.jpg)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8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일반 청중과 2025년 첫 교리 문답을 갖고 있다. 바티칸=AP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 내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이민자는 물론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것이 가톨릭의 정신"라며 반(反)이민 정서를 거부하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트럼프 행정부는 "교황은 미국 내부 문제가 아닌 교회 업무에 충실하라"고 맞받아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일(현지시간) 미국 가톨릭 주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순전히 불법 체류를 이유로 사람들을 강제 추방하는 것은 본질적인 존엄성을 박탈하는 일"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추방이) 결국 나쁜 결말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민자들은 극심한 빈곤, 불안정, 착취, 박해 등으로 자신들의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라며 "이들을 강제로 추방하는 건 수많은 사람들을 취약하고 무방비한 상태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황은 가톨릭 교리를 이용해 이민자 차별을 정당화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질타하는 듯한 언급도 했다. 가톨릭 신자인 밴스 부통령은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오르도 아모리스(ordo amoris·사랑의 질서라는 뜻)'라는 초기 가톨릭 신학 개념을 인용하며 "가족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다음으로 이웃, 지역 사회, 자국민,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국인을 돌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황은 "진정한 '오르도 아모리스'란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향해 열린 형제애를 구축하는 사랑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촉진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법치주의는 모든 사람, 특히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엄한 대우에서 정확하게 검증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 신자들을 향해 "이민자와 난민 형제자매를 차별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는 이야기에 굴복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지난달 30일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포트 블리스 기지에서 마스크를 쓴 불법 이민자들이 손과 발에 족쇄를 찬 채 과테말라행 군용기에 앉아 있다. 엘패소=AP 뉴시스](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5/02/12/ac6fd957-3210-4306-a387-737ef0e596a3.jpg)
지난달 30일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포트 블리스 기지에서 마스크를 쓴 불법 이민자들이 손과 발에 족쇄를 찬 채 과테말라행 군용기에 앉아 있다. 엘패소=AP 뉴시스
교황은 이날 이민자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해 온 에드워드 바이젠버거 주교를 디트로이트 대교구장으로 임명했다. 바이젠버거는 트럼프 1기 시절인 2018년 "남부 국경 이민가족분리정책에 참여한 국경순찰대원들은 성찬식 참석을 거부당할 수 있다"고 언급했던 인물이다. 이민가족분리정책은 아이와 불법 입국을 시도하다 적발된 부모가 기소되는 경우 자녀는 보호소에 분리 수용하도록 한 정책이다. 지난달에는 트럼프 1기 때부터 이민자 인권 보호에 앞장섰던 로버트 맥엘로이 추기경이 새로운 워싱턴 대주교로 임명되기도 했다. 또다시 반이민 정책을 밀어붙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우회적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교황이 트럼프 행정부를 정면 비판하자 백악관은 발끈했다. 톰 호먼 백악관 국경 담당 차르는 "교황은 가톨릭 교회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교황은 교회에 충실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국경 단속은 우리에게 맡기면 좋겠다"고 힐난했다. 이어 자신 또한 평생 가톨릭 신자로 살아왔다면서 "교황이 거주하는 바티칸은 보호를 위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미국은 주변에 벽을 쌓을 수 없다"며 이민자 추방 정책을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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