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국방부 난색… FBI·DNI 수장도 거부
노조·민주 “불법”… 공화內서도 “불가능”
정권 내분 양상… “실세권력 한계 시험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가 20일 미 워싱턴 외곽 메릴랜드주 옥슨힐에서 열린 연례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의 연설 무대에 올라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부터 건네받은 전기톱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전기톱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흔들며 “관료주의(혁파)를 위한 전기톱”이라고 말했다. 옥슨힐=AFP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정부 인력 감축을 주도하는 일론 머스크의 ‘주말 이메일’ 후폭풍이 거세다. 출근 첫날까지 업무 성과를 제출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지나친 위협에 ‘트럼프 충성파’ 기관장들마저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동시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신설 조직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을 맡으며 ‘정권 최고 실세’에 오른 머스크가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권한 침범한 인사처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의 각 연방기관은 토요일인 전날 인사관리처(OPM)로부터 ‘지난주 업무 실적을 요약해 보고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은 직원들에게 ‘대응하지 말라’고 안내하고 있다. 해당 이메일은 자신이 한 일을 다섯 가지 요점으로 정리해 월요일인 24일 밤 11시 59분까지 답변할 것을 지시했다.
반응은 좋지 않다. 국무부의 경우 티보르 나기 관리 담당 차관 직무대행이 직원들에게 “누구도 지휘 체계 밖으로 본인 활동을 보고할 의무가 없다”고 알렸다. 국방부도 인사 담당 대행 메시지로 “자체 절차에 따라 직원 업무 성과 평가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국토안보부, 보건복지부 등도 유사한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연방수사국(FBI)과 국가정보국(DNI)은 기관장이 직접 회신을 금지했다. 캐시 파텔 FBI 국장은 내부 문서로 “FBI 절차를 통해 내부 검토를 실시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털시 개버드 DNI 국장도 내부 메시지로 “업무의 민감성·기밀성을 감안할 때 정보기관 근무자들은 OPM 이메일에 답변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230만 명 정보가 모이면

지난달 30일 캐시 파텔 당시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후보자가 미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법사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그는 20일 미 의회에서 FBI 국장으로 인준됐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이메일 발송을 시킨 인물은 머스크다. 그는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대통령 지침에 따라 곧 모든 연방정부 직원들이 지난주 무슨 일을 했는지 알려 달라는 이메일을 받게 될 것이다. 응답하지 않으면 사임으로 간주하겠다”고 적었다. 실제 트럼프는 당일 오전 SNS 트루스소셜에 더 공격적인 머스크를 보고 싶다고 썼고, 이는 같은 날 OPM 이메일로 이어졌다.
그러나 머스크 이메일은 문제가 많다. 우선 토요일에 보냈기 때문에 상당수가 보지 못했을 수 있다. 또 허가 없이 본인 업무를 공개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은 데다, 개별 정보는 기밀이 아니어도 수많은 정보가 한곳에 모이면 기밀이 된다는 지적(워싱턴포스트)도 나온다. 미국 연방 공무원 규모는 230여만 명에 이른다.
법적 근거도 불분명하다. 미국연방공무원노조(AFGE) 위원장인 에버렛 켈리는 23일 OPM에 이메일을 보내 “명백한 불법인 만큼 요청을 철회하라”고 했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도 이날 성명에서 “머스크에게는 (공무원 성과 제출) 요구 권한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황당하다는 반응은 공화당 내에서도 나온다. 마이크 롤러 연방 하원의원(뉴욕)은 이날 ABC방송에 “어떻게 그게 실현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좌파 기관’ 해체 재시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게시물. 애니메이션 ‘네모바지 스폰지밥’ 캐릭터가 지난주 한 일 다섯 가지를 적었다. “사무실에 한 번 갔다”, “이메일 몇 개를 읽었다” 등이다. 공무원 조롱으로 읽힌다. 트루스소셜 화면 캡처
트럼프 행정부 내 알력을 부추기는 양상도 띠고 있다. 머스크 지시에 반기를 든 파텔과 개버드는 트럼프가 논란을 무릅쓰며 기용한 충성파 인사들로 꼽힌다. NYT는 “이번 내분은 최고 실세 머스크의 권력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가늠할 시험대”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일단 머스크 편인 듯하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 해석이다. 그는 23일 트루스소셜에 “이메일 몇 개를 읽었다”, “트럼프와 일론 때문에 울었다” 따위가 지난주 한 일 다섯 가지인 애니메이션 ‘네모바지 스폰지밥’ 캐릭터를 설명 없이 올렸다. 공무원 조롱으로 읽힌다. 머스크는 이날 X에 자신의 요청이 “아주 기본적인 맥박 검사”에 불과하다고 썼다. 회신이 오는지, ‘가짜 직원’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용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머스크의 정부 구조조정 속도전은 여전히 거침없다. 첫 표적으로 삼은 ‘좌파 기관’ 미국국제개발처(USAID) 해체 작업에 다시 시동을 건 모습이다. 21일 법원의 제동이 풀리자 이틀 만에 대부분 직원에게 공무 휴직 처리 방침을 통지했고, 직책 1,600개를 없애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직원 1만여 명 중 290명가량만 남긴 뒤 국무부 산하로 통합한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 구상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